번아웃 예방. 그리고 나를 아껴주기.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크게 몸살에 걸린다.
아무것도 못하고 끙끙거리며 앓고 있으면,
와이프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여보. 요즘 너무 무리하더라.
열심히 하더라도 회복할 수 있을 최소한의 힘은 남겨놔요."
그렇다. 나는 번아웃 상황이었던 것이다.
감기처럼 매년 나를 찾아오고 있는 번아웃.
번아웃을 예방하고,
번아웃이 나의 주변을 서성일 때,
내가 번아웃 위험상태라는 것은 알 수 있게 해 준
'나는 오늘도 소진되고 있습니다'의 소중한 표현들을 함께 나누어 본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심리적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럼 완전 번아웃은 아니네!'라는 말이다.
(→ 이 문장을 읽으며 얼마나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는지.
방전이 되었다고 느낀 순간, 아직은 회복할 수 있는 기력이 있음을 느끼게 해 준 문장이었다.)
지치고 힘든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그 편이 되어주기'이다.
힘든 일을 겪은 친구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우리가 끝으로 건네는 말 중 하나가 "아무 생각하지 말고 푹 자"가 아니던가. 어느 정도 에너지를 회복하면, 그다음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고민할 수 있게 된다.
번아웃 증후군은 1970년대 미국의 정신분석 의사 헤르베르트 프로인데베르거(Herbert Freudenberger)가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처음에는 앞서 간호사의 이야기처럼 '누군가를 돕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과도한 업무량, 극도의 스트레스 그리고 스스로의 엄격한 잣대 또는 그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이상으로 인해 느끼게 되는 피로, 소진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였다. 그러나 현대에는 직종과 무관하게 과도한 업무로 인한 '심신의 에너지 고갈', '무관심 또는 냉소적', '업무 성과 저하'의 증상들을 보이면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한다.
* 매슬랙 박사와 마이클 라이터 박사가 본 번아웃의 6가지 원인
- 업무 과부하
- 업무 자율성 부족
- 충분하지 못한 보상
- 공동체 의식의 해체
- 공정성의 결여
- 가치 갈등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서 세상을 포기하려던 순간, 누군가의 따뜻한 관심과 말 한마디는 다시 희망을 갖고 힘을 내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그 관심과 사랑을 스스로에게도 줄 수 있다. 그러니 그 말을 오늘 스스로에게 해주면 좋겠다. 정말 우리는 수고하고 있지 않은가.
사랑하는 존재는 지쳐 있는 우리 마음에 위로가 되어주고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해 준다. 안타까운 것은 현실에서 지치고 힘든 마음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말하거나 위로받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실제로 힘들 때,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툭 터놓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중한 사람들의 걱정도 이유가 되겠지만, 지치고 힘든 것은 위로와 도움의 대상이 아닌, 비난받을 대상이나 약점,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갈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자신이 힘든 것을 말하게 되면, 비난받게 되고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될까 봐 침묵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세계적인 영성 지도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루이스 헤이의 강연에 참가했을 때이다. 그녀는 종이 하나와 펜 하나로 3~5분 남짓의 시간 동안 그곳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그 방법은 한국에서도 통했다. 모 기업에 강의를 갔을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듣고 싶은 말을 적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는 이에게 그 말을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울진 않았지만 표정이 환해졌다.
젠가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은 나무 블록을 쌓아놓고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블록을 하나씩 빼다가, 블록을 쓰러트린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처음에는 다들 거칠게 블록을 뺀다고 해도 블록은 무게 중심이 잘 잡혀 있기 때문에 괜찮다. 하지만 점점 블록이 빠지기 시작하면 남아 있는 블록들은 중심을 간신히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 남아 있던 그 많던 블록이 한순간에 다 무너진다. 번아웃을 떠올리게 하는 게임이다.
원래도 바쁘긴 했지만, 최근 몇 년간은 특히 바빴다고 한다. 워낙 사람들에게 배려심이 많고 성격도 좋은 그녀는 유방암에 걸렸을 때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며, 자신의 암 소식에 너무 걱정하거나 불편해하지 말라고 했다. 사실 그녀는 어느 정도 자신의 몸에 문제가 생길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전부터 건강의 위험 징후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들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과로를 이어갔다. 그리고 암에 걸리자, 이제 마음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작은 회사일수록, 일인 다역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녀들의 말은 어찌나 이렇게 같은지.
"암이면 합법적으로 쉴 수 있잖아요."
번아웃 전문가들이 번아웃의 해결책 1순위로 제안하는 것이 '휴식'이다. 단순히 일을 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상황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저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번아웃 상태가 강도 높은 스트레스와 함께 맞물리게 되면 우울증, 공황장애 등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가능하면 더 큰 병으로 발전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쉼'을 주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긍정성과 부정성의 비율이 2.901대 1 이상일 때 수익성이 두드러지게 증가했고, 다면평가에서도 현저한 개선을 보였다. 반대로 비율이 그 이하로 떨어질 때는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가 급락했고 이직률 역시 증가했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과도한 부정적 피드백으로 인해 스트레스, 불아감, 자신감 저하 등을 겪게 된다.
번아웃은 '업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직장에서 지지 그룹을 만드는 것이 좋다. 번아웃이 심한 경우에는 타인과 지지그룹을 형성하는 것조차 꺼려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라도 모임을 갖고 지지를 받으면 차차 마음이 열리고 힘을 얻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직장에서의 지지그룹은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단,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오해를 받거나 소외를 당한 경우라면, 직장 외 지지그룹의 도움을 먼저 받는 것이 더 낫다는 점도 명심하자.
번아웃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그렇기에 관계에서 그 답을 모두 찾을 순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지지와 격려는 놀라운 치유의 힘이 있다.
2019년 한 해.
나를 가장 많이 따라다닌 Key word는 바로 '번아웃'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번아웃 상태에 있어. 내 삶은 힘들어.'
라는 상태에서 읽었던 이 책은 되려 나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 줬다.
'아니야. 나에게는 아직 힘이 남아 있어.
할 수 있어. 나잖아.
그리고 혹시 기운을 회복하면 나에게 약속해줘.
다시는 이렇게 몸을 혹사시키지는 않겠다고 말이야.'
2019년을 되돌아보는 시점에 다시 꺼내 든
이진희 한의사님의 '나는 오늘도 소진되고 있습니다'.
나는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제는 완벽한 나에서,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나를 위해서 잠시 내려놓을 줄 아는 나'로 변화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