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인사 Dec 25. 2019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소중한 공간에 대한 재발견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로 널리 알려진 건축가 '유현준' 교수님의 신간.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를 읽었다.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_ 유현준 저. 와이즈베리 출판사]

우리 모두는 공간의 소중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주거를 통해서, 휴식을 위해서, 때론 생존을 위해서.


저자 유현준 님은 우리의 인생에서 함께한 공간들을

건축가적 관점에서 하나씩 살펴보며,

우리에게 진정한 슈펠리움(Spielraum, 주체적 공간)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책 속에 담겨 있는

공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함께 나누어 본다.


1) 골목길 계단

지금 생각해보니 누구에게는 골목길 계단이지만 그때의 거지들에게는 이 도시 속에 앉아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벤치였고 유일한 쉼터였다.


2) 초등학교 계단실

학창 시절 혼자 있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계단실 꼭대기의 계단참이었다.

그곳에서 좋아하는 친구 몇 명이 점심을 먹고 남는 시간에 오후에 있을 쪽지 시험공부를 같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 있으면 '우리'라는 생각이 만들어지고 좋았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렇듯 자신이 맘대로 쓸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학교 관리자들은 이런 공간을 '위험한' 공간이라고 규정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감시를 받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학교는 모두가 전체주의적 단체생활을 강요하는 공간이다.


3) 포틴 아워(fourteen hour)

1994년 스물다섯 살 때 내 별명은 '포틴 아워(fourteen hour)'였는데, 이유는 하루에 열네 시간을 스튜디오에 계속 앉아 있어서였다. 매 학기가 시작되면 스튜디오의 의자와 책상을 꾸미는 데 돈을 아낌없이 썼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가장 많은 삶을 빚는 공간이다. 그곳이 좋아야 그 사람의 삶의 질도 좋아진다.


4) 리스펙트(Respect)

리처드 마이어 사무실. 이 공간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서로를 존중한다. 요즘 말로 리스펙트다. 이전 학교의 분위기가 경쟁이 키워드라면 이 사무실에서는 직원들끼리 리스펙트 한다. 김정운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리스펙트는 '당신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 생각이 틀렸다고 인정하고 나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는 상태'라고 한다. 리스펙트를 가장 잘 정의 내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에서 일하는 것은 즐겁다. 월급이 적고 야근이 많아도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 사무실에서 경력을 쌓는 시간은 즐거웠다. 자신의 일터가 동료를 리스펙트 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5) 계단 있는 길

도시에서 데이트하기 좋은 공간을 꼽으라면 단연 계단이다. 계단은 관계를 쌓는다. 자동차가 다닐 수 없고, 특히 길 끝에 계단이 있는 길은 차가 없어 천천히 걸을 수 있다.

계단의 한 단은 28센티미터 깊이와 18센티미터 높이 차로 나누어진 공간이다. 미묘하게 나뉘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세심한 사람 관계가 관찰된다. 계단에서는 발을 맞춰 걷게 된다.


6) 벤치

연인은 극장에 가서 둘 사이의 팔걸이를 걷어낸다. 이는 극장의 개인 의자를 벤치로 만드는 행위다. 이처럼 벤치는 두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해 준다. 연인은 등받이가 있는 벤치에 앉아야 한다. 가져다 놓은 의자 옆에 화분까지 둔다면 금상첨화다.


벤치가 좋은 이유는 다른 사람과 함께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두 개의 의자를 둔 것과는 달리 벤치는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게 의자 상판에 경계가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가깝게 앉을 수 있다.


7) 상어

도시민은 상어와 같다. 부레가 없어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계속 헤엄을 치고 움직여야 하는 상어처럼 우리는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계속 움직여야 한다.


8) 테이블 모서리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테이블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앉으면 좋다. 보통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보려면 고개를 90도 돌려야 하는데 반해, 모서리에 앉은 사람은 45도만 고개를 돌려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람 간의 친밀함을 만드는 거리는 45센티미터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보통 테이블 모서리에 앉으면 적절하게 이 정도 거리가 떨어진다.


9) 원목 나무 식탁

가급적 식탁은 유리 없이 원목 나무면 더 좋다. 유리는 차가워서 팔을 기대어 앉기가 어렵다. 차가운 유리 식탁은 촉감이 별로여서 오랫동안 앉아 있게 되지 않는다. 앉아 있을 때에도 차가운 유리에 기대지 못하기 때문에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앉게 된다. 그러면 마주 앉은 사람과는 거리가 더 멀어진다. 사람의 체온과 가장 비슷한 나무 재질로 만든 식탁을 두면 체류 시간이 더 길어지고 몸을 앞으로 기대어 가족 간의 거리가 더 좁아진다. 나무 식탁은 더 많은 시간 동안 친밀하게 가족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10) 촉각

사람이 소득이 늘어나면 처음으로 예민해지는 부분이 청각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1970~1980년대에는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이나 마이마이가 인기였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더 올라가면 냄새에 민감해진다. 그래서 1990년대부터 남자들이 향수를 쓰기 시작했다.

그다음 단계는 촉각이다. 그래서 지금은 만질 수 있는 애완동물 시장이 커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애완동물이라는 단어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다. 21세기에는 쓰다듬는 가전제품인 스마트폰이 나왔다.


11) 조금씩 바꾸기

최근에 감동적인 광고를 보았다. 첫 장면은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100미터 금메달리스트 제시 오언스(Jesse Owens)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는 당시 세계기록인 10초 02를 기록했다. 이후 그 기록은 캘빈 스미스(Calvin Smith)가 9초 93으로 줄였고, 칼 루이스(Carl Lewis)가 9초 86으로 줄였다. 리로이 버렐(Leroy Burrell)이 9초 85로 줄였고, 모리스 그린(Maurice Greene)은 9초 79로 줄였다. 아사파 파월(Asafa Powell)은 9초 74를 기록했다.

이렇듯 100미터 기록은 몇 년에 한 번씩 0.1초씩 서서히 줄어든다. 그다음으로 우리 시대 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Usain Bolt)가 나온다. 그는 9초 58을 뛰었다. 이어서 우사인 볼트의 독백이 나온다. "나 이전에 수많은 레전드들이 있었다. 이 시대는 나의 시대다. 그리고 나 이후에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을 안다." 이쯤에서 관중석에 있는 어느 소년의 진지한 표정을 보여준다. 볼트는 계속 말한다. "그래야만 한다. '이 정도면 됐다'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멋진 은행 광고였다. 이 광고처럼 한 번에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면 조금씩 바꾸면 된다.


<책장을 덮으며>

나도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모두 잠든 새벽시간에 서재에 앉아

최근 읽은 책들을 정리하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저자의 포틴아워처럼

회사의 내 자리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항상 깔끔하게 정리해 놓는다.

책상이 깔끔해야 일도 깔끔하게 잘 되는 것 같아서 그렇다.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할 때 가는 공간도 있다.

집에서는 뒷산에 오른다.

새들의 노래를 듣고, 나무들의 속삭임을 듣는다.

회사에서는 가까이 있는 한강에 나간다.

한강 다리 밑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온다.


이렇듯 공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저자의 글을 통해 공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많이 되새겨 볼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오늘도 소진되고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