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인사 Mar 13. 2022

우리가 언제 만났었죠?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습니다.

나는 기억력이 나쁘다.

"그거 기억 안 나?"

회사 상사, 그리고 아내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가끔 억울하지만 정말 기억이 안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메모광이다.

직장 생활 초창기. 나는 정말 메모를 열심히 했다.

주변 사람들은 "책인사씨는 메모를 참 열심히 하네요. 보기 좋아요."

라고 했지만, 내가 메모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대리님 때문이었다.

대리님은 항상 나를 혼냈다.

"인사! 내가 A로 하라고 했지? 기억 안 나? 어? 또 처음 듣는다는 표정 짓는다!"

그래서 나는 메모를 시작했다.

"아닙니다. xx월 xx일 xx시에 B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적은 메모가 있습니다."

물론, 본인을 거짓말쟁이 취급하냐고? 

네가 메모를 잘 못한 것 아니냐고?

어디서 말대꾸를 하냐고?

더 혼나기는 했다.




이렇게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직원 이름 외우기'이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나는 정말 열심히 직원들의 이름을 외웠다.

인사노무담당자로서의 의무감이었는지 몰라도,

첫 번째 직장에서는 약 1,000여 명의 이름은 물론

출신학교, 군대 기수, 거주지 및 가족관계까지 머릿속에 기억하고 다닐 정도였다.

물론 시간 날 때마다 직원들의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도 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은 정말 직원이 많다.

수만 명의 직원이 있다. 물론 그중에 나와 관계된 직원은 수백 명으로 추려지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많은 직원들과 일을 한다.


지난주에는 현장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현장 동행 체험을 하며, 함께 동행하는 직원에게 물었다.

"우리가 언제 만났었죠?"

아... 실수였다.

그 직원은 나와 반년 가까이 한 달에 한 번씩 회의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직원인데,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저녁자리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 직원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실망하는 직원의 눈빛이 느껴졌다.

물론 2~3년의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던 그 직원은 본사 직원 중 나와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2~3년의 시간 앞에 내가 그 직원을 제대로 기억해 내지 못한 것이다.


물론 내가 그 직원과 동행을 하기 전에 얼른 조회를 해봤었어도 되는 것이었는데,

그런 성의를 보이지도 못했다.


하루 종일 그 직원과 동행 체험을 하면서 미안한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기존의 기억이 지워져야, 새로운 기억이 채워질 수 있다.

하지만 항상 직원들의 이름을 기억해 주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

나 스스로도 부끄러운 순간이었고,

내가 기억해주지 못한 그 직원에게도 실망스러운 시간이었을 것 같다.


그동안 너무 일이 바빴다는 이유로 잠시 소원해진 직원들의 이름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앞으로 직원들에게 실수하지 말자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 우렁각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