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생활을 통해 느낀 삶의 소중함
신영복 교수님의 글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보게 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근무하던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받게 된 교수님은 20년 20일간의 옥중생활 속에서도 삶에 대한 다양한 통찰의 글을 남기셨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표현들을 적어봅니다.
농촌 아이들은 참 많이 죽는다. 시골의 어머니들은 보통 여남은 명의 아이를 낳지만 그중 네댓 명 정도만 남고 다 죽는다. 약한 놈은 '일찌감치' 죽어버리고 강한 놈만 살아서 커가는 것이다. 농촌에서는 강한 아이만이 어른이 될 수 있다. 살아남은 그 어른들을 보고 성내 사람들은 농촌 사람들이 무병하고 건강하다고 말한다. 맑은 공기에 산수, 일광이 좋아서 농촌 사람들은 무척 튼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골 어머니들이 흘린 그 숱한 눈물을 모르는 것이다.
농촌의 노인들이 도회지에 가면 전부 환자가 된다. 그것은 교통사고로 아스팔트 위에서 부상을 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시골에서는 질병이 인내되는 데에 반하여 도회지에서는 치료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이들의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중요한 것은 '첫 대화'를 무사히 마치는 일이다.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서로의 거리를 때에 따라서는 몇 년씩이나 당겨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꼬마들에게 던지는 첫마디는 반드시 대답을 구하는, 그리고 대답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제가 어머님께 바라고 싶은 것은 젊은 사람한테 자꾸 배우시라는 것입니다. 옛날 같지 않아 이제는 점점 젊어가는 노인이 되셔야 합니다. 진정 젊어지는 비결은 젊은이들로부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출석부의 명단을 죄다 암기하고 교실에 들어간 교사라 하더라도 학생의 얼굴에 무지한 한, 단 한 명의 학생도 맞출 수 없습니다. '이름'은 나중에 붙는 것, 지식은 실천에서 나와 실천으로 돌아가야 참다운 것이라 믿습니다.
사다리를 올라가 높은 곳에서 일할 때의 어려움은 무엇보다도 글씨가 바른지 삐뚤어졌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코끼리 앞에 선 장님의 막연함 같은 것입니다. 저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물어봄으로써 겨우 바른 글씨를 쓸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아라공의 시구를 좋아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
이 두 사람은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제일 많은 사람이 달라붙는 말단의 바닥일을 골라잡습니다. 일부는, 더러는 먹물이 좀 들어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힘이 덜 들어서가 아니라, 약간 독특한 작업상의 위치를 선호하여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일정하게 구별하려는 경향이 있음에 비하여 이 두 사람은 언제나 맨 낮은 자리, 그 무한한 대중성 속에 철저히 자신을 세우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두 사람은 제게 다만 일솜씨만을 가르치는 '기술자'의 의미를 넘어서 '사람'을 가르치는 사표(師表)가 되고 있습니다.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싸움은 첫째 싸우지 않는 것이 상지상책입니다. 그 다음이 잘 지는 것, 그 다음이 작은 싸움, 그리고 이기든 지든 큰 싸움은 하책에 속합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다 보니,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무기수로 살아가야 하는 교수님의 담담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젊은 나이에 육군사관학교 교수를 할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삶을 살아가는 교수님에게 어느 날 마주하게 된 무기징역의 벽은 삶의 희망을 놓아버릴 정도로 큰 좌절감과 아픔이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하루하루를 착실하고 묵묵하게 살아가셨습니다. 그 누구를 탓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주변 사람들을 살피며, 소중한 삶에 대한 의미를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가셨습니다.
그 좁디좁은 공간 속에서도 삶을 비관하지 않고,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간 교수님의 안목과 철학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저에게도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교수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지만 교수님의 철학이 담긴 글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