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ube '별별역사' 채널을 통해, 히틀러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별별역사 채널에서 인용한 '인간의 흑역사'라는 책을 읽어보게 되었고,
‘인간의 흑역사’ 내용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인류가 아무리 눈부시게 발전하고 아무리 많은 난관을 극복했다 해도, 파국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역사 속에서 예를 찾아보자. 9세기 북유럽의 장수였던 '천하장사 시구르드'는 적장 '뻐드렁니 마엘 브릭테'의 목을 베어 말안장에 매달고 의기양양하게 귀환했다.
그러나 마엘 브릭테의 뻐드렁니가 말 타고 달리던 시구르드의 다리를 계속 긁었고, 그 상처의 감염으로 시구르드는 며칠 만에 죽고 만다. 천하장사 시구루드는 자기가 이미 죽인 적에 의해 죽임을 당한 불명예스러운 주인공으로 전쟁사에 길이 남았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 자만은 금물이다. 둘째, 적의 치아 위생에 유의하자. 이 정도일 것이다.
1949년 말,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이 집권했을 당시, 중국은 보건 문제가 심각했다. 콜레라, 흑사병, 말라리아 등 전염병이 창궐했다. 봉건시대를 벗어난 지 이제 수십 년밖에 안 된 농업 국가를 현대적 산업 강국으로 탈바꿈한다는 마오쩌둥의 목표를 이루려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문제는 마오쩌둥이 국난의 책임을 동물들에게 돌리면서 시작됐다. (중략) 네 번째 유해동물은 참새였다.
참새는 곡식을 쪼아 먹으니 나쁜 놈이었다. 1년에 참새 한 마리가 먹어치우는 곡식의 양이 4.5킬로그램에 달했다. 인민을 먹여 살릴 소중한 곡식이 그만큼 사라지는 것이다. 참새 100만 마리를 잡으면 인구 6만 명을 더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논리였다.
(중략) 그러나 뭔가가 잘못되었음이 곧 드러났다. 그 10억 마리의 참새들이 곡식만 훔쳐 먹었던 게 아니었다. 참새들은 해충도 잡아먹었다. 특히 메뚜기가 참새의 밥이었다.
10억 마리의 천적이 갑자기 사라지자 중국의 메뚜기들은 매일매일이 잔칫날이었다. 여기저기서 곡식을 조금씩 쪼아 먹는 참새와 달리 메뚜기떼는 거대한 공포의 구름을 이루어 중국의 논밭을 통째로 싹쓸이했다. 1959년 마침내 전문가(참새 소통 작전은 위험하다고 일찍이 경고했던 조류학자 정줘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졌고, 공식 유해 동물 명단에서 참새가 빠지고 대신 빈대가 들어갔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으니, 참새 10억 마리를 박멸하고 나서 '어, 이게 아니네, 취소'하고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국제정치라는 게 참 어렵다. 숭고한 이상이 설자리는 별로 없고, 실리를 생각하면 마음에 꼭 드는 상대가 아니더라도 아쉬운 대로 손을 잡아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것만 기억해도 번번이 곤경을 자초하는 일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적의 적도 대개는 처음 적 못지않게 나쁜 놈이라는 것.
화성 궤도선의 결함이 드러난 것은 발사 후 몇 달이 지나서였다. 관제소에서 우주선의 경로를 미세하게 조정해 항로를 유지시켜려고 할 때마다, 의도한 대로 조정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결함이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더 나중이었다. 우주선이 화성에 도달해 궤도 진입을 시도하는 순간, 지상 관제소와 교신이 끊긴 것이었다.
조사를 한 뒤 원인이 밝혀졌는데, 궤도선은 충격량, 즉 자세 조정에 필요한 추진기 분사량을 표준 미터법 단위인 '뉴턴 초(N.s)'로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외부 업체에서 납품받은 지상 컴퓨터 상의 소프트웨어는 야드 파운드 법 단위인 '파운드 초'를 쓰고 있던 것이다. 그 결과 추진기를 분사할 때마다 그 효과가 예상보다 네 배 크게 나타났고, 우주선은 목표했던 고도보다 약 100킬로미터 더 화성 표면에 가깝게 접근하고 말았다. 이어서 궤도에 진입하려는 순간 화성 대기에 강하게 충돌했고, 3억 2,700만 달러짜리 최첨단 우주선은 바로 산산조각이 났다.
웨스턴 유니온사의 칼 오턴 사장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자신의 전화기 특허를 팔겠다고 제안하자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회사가 이런 장난감을 어디에다 쓰겠소?"
더닝 크루커 효과라고 하는 유명한 인지 편향 현상이 있는데, 이 책을 대표하는 이론으로 삼아도 될 듯하다. 이는 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가 '무능에 대한 무지(Unskilld and Unaware of It)'라는 논문에서 제안한 효과로, 우리가 살면서 익히 알던 현상을 입증한 것이다. 즉,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잘 못 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엄청나게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결점을 말 그대로 잘 모르니, 그 결점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당연히 모른다. 그래서 마냥 난관하고 과신하다가 사고를 치고 일을 그르치기를 끝없이 반복한다.
영국 정부는 인도 델리에서 유해 동물 방제 운동의 일환으로 죽은 코브라를 가져오면 포상금을 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코브라를 길러 손쉽게 포상금을 타갔다. 그러나 영국은 포상금을 폐지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쓸모없어진 코브라를 방생했다. 결과는 코브라 창궐.
키스카섬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에 일본이 점령한 두 섬 중 하나로, 이때 미국은 1812년 영국과 싸운 이래 처음으로 외국에 자국 영토를 점령당했기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1943년 여름, 미군과 캐나다군 34,000명은 키스카섬 탈환 작전을 준비했다. 8월 15일에 연합군 병력이 키스카섬에 상륙했을 때, 섬은 한파가 몰아치고 짙은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포탄 소리와 따닥 거리는 총성, 명령 소리와 일본군이 나타났다는 외침 소리가 배경음처럼 끝없이 들려왔다. 다음 날이 되고서야 연합군은 피해 규모를 점검해보았다. 사망자 28명, 부상자 50명이었다. 그제야 그들은 적군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본군은 이미 3주 전에 섬을 버리고 떠난 후였다. 미군과 캐나다군이 서로 총질을 했던 것이다.
딱하지만 한편으로 이해가 가는 참사일 수도 있겠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이미 공중정찰팀이 섬에서 일본군의 활동이 전혀 관찰되지 않아 병력이 철수한 듯하다고 상륙 몇 주 전에 작전 지휘관들에게 알린 후였다. 하지만 지휘관들은 애투섬에서 겪은 일이 있던지라 일본군은 절대 퇴각 같은 건 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확증 편향이 제대로 발휘된 순간이었다. 지휘관들은 어찌나 확신에 찼던지, 만일을 위해 정찰 임무를 몇 번 더 수행해보겠다는 제안마저 거절했다. 여기서 우리는 매사를 지레짐작하지 말자는 교훈을 건질 만하다.
1888년, 시카고의 한 감리교 선교단체는 돈이 궁해 '순회형 헌금함'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다.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1,500통 부쳤는데,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동전 한 닢씩만 보내달라, 그리고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지인 3명에게 보내달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6천 달러가 넘는 돈이 들어왔다. 다만 같은 편지를 여러 번 받고 크게 화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행운의 편지'의 탄생이었다.
케슬러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일찍이 1978년 NASA의 과학자 도널드 케슬러가 처음 예견한 현상이다. 우주선에서 던진 쓰레기는 우주선이 돌던 궤도와 똑같은 궤도를 거의 비슷한 속도로 돌게 된다. 그러면서 다른 쓰레기와 충돌하기도 한다.
이게 왜 골치 아픈 문제냐 하면, 궤도를 도는 속도란 워낙 엄청나기 때문에 충돌의 파괴력이 실로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아주 조그만 물건과 한 번 충돌하는 것만으로도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위성이나 우주정거장이 산산조각 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충돌 사고가 한 번 나면... 그렇다. 수천수만 개의 우주 쓰레기가 새로 생긴다. 그것들이 다 이제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도널드 케슬러는 이렇게 내다보았다. 언젠가 결국 우주 쓰레기 밀도는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 그때부터는 매번 충돌이 걷잡을 수 없이 더 많은 충돌로 이어져, 결국 우리 지구는 초고속 쓰레기 미사일의 거대한 장막으로 덮이게 된다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위성은 쓸모가 없어지고, 우주로 나간다는 것은 치명적 위험을 안게 된다. 사실상 지구에서 영원히 못 나가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 묘하게 시적인 결말인 듯하다. 결구 우리 손으로 만든 쓰레기 감옥에 갇혀 사는 운명으로 귀결된다니.
우리 인간은 항상 공부를 합니다. 연구를 하고, 생각을 합니다.
왜 사람들은 계속해서 공부를 통해 옛 것에서 교훈을 찾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학습해 나갈까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와 같은 작은 선택부터,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크고 중요한 선택까지, 우리 모두는 항상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인간의 흑역사’라는 책은 그동안 인류가 항상 옳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최악의 선택을 일부러 한 듯한 사례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일의 결과가 안 좋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 좋은 선택, 최선의 결과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양한 이유로 선택하지 아니하는 것만 못한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공을 통해 더 나은 성공의 노하우를 습득하게 됩니다.
반대로 실패를 통해 또 다른 실패를 예방하는 교훈을 터득하게 됩니다.
수많은 책들이 성공의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을 때,
‘인간의 흑역사’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실패를 통한 교훈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것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