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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Dec 25. 2022

강의

신영복 교수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신영복 교수님의 '강의'라는 책을 꺼내 읽게 되었습니다.

신영복 교수님께서 끝이 보이지 않는 옥중 생활 속에서도,

편지글을 통해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해주셨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달리,

'강의'에서는 어떤 교훈을 전해주셨는지?

교수님만의 통찰력을 적어봅니다.


[강의 _ 신영복 지음 _ 돌베개 출판사]


1) 서양문화가 현대화를 실현한 저력

 서양 문화의 기본적 구도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종합 명제(合)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흄과 칸트의 견해입니다. 서양 근대 문명은 유럽 고대의 과학 정신과 기독교의 결합이라는 것이지요. 과학과 종교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고 기독교 신앙은 선(善)을 추구합니다. 과학 정신은 외부 세계를 탐구하고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종교적 신앙은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며 사회의 갈등을 조정합니다. 서양 문명은 과학과 종교가 기능적으로 잘 조화된 구조이며 이처럼 조화된 구조가 바로 동아시아에 앞서 현대화를 실천한 저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2) 대동제

 우리가 보통 점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상, 명, 점으로 나눕니다. 상은 관상, 수상과 같이 운명 지어진 자신의 일생을 미리 보려는 것이며, 명은 사주팔자와 같이 자기가 타고난 천명, 운명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상과 명이 이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미리 엿보려는 것임에 반하여 점은 '선택'과 '판단'에 관한 것입니다. 이미 결정된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판단이 어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 찾는 것이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인간의 지혜와 도리를 다한 연후에 최후로 찾는 것이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경, '홍범'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의난이 있을 경우 임금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묻고, 그다음 조정 대신에게 묻고 그다음 백성들에게 묻는다 하였습니다. 그래도 의난이 풀리지 않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비로소 복서에 묻는다, 즉 점을 친다고 하였습니다. 임금 자신을 비롯하여 조정 대신,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의 지혜를 다한 다음에 최후로 점을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괘와 백성들의 의견과 조정 대신 그리고 임금의 뜻이 일치하는 경우를 대동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대학의 축제인 대동제가 바로 여기서 연유하는 것이지요. 하나 되자는 것이 대동제의 목적이지요.


3) 득위의 비결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겠지요.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잘못된 사람이 차지하고 앉아서 나라를 파국으로 치닫게 한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능력과 적성에 아랑곳없이 너나 할 것 없이 '큰 자리'나 '높은 자리'를 선호하는 세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70%의 자리'가 득위의 비결입니다.


4) 군자와 소인

 '군자화이부동()'의 의미는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소인동화불화()'의 의미는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화의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면서 나아가 공존과 평화의 원리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의 논리는 지배, 흡수, 합병의 논리입니다. 동의 논리 아래에서는 단지 양적 발전만이 가능합니다. 질적 발전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화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5) 이익추구

 만약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하시면, 대부들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해야 내 영지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이고, 사인이나 서민들까지도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입니다. 위아래가 서로 다투어 이를 추구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맹자>


6) 맹모삼천지교 vs 한석봉의 어머니

 나는 맹모보다는 한석봉의 어머니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식을 지도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맹모처럼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몸소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자식이 그것을 본받게 했던 것이지요. 가난한 떡장수였던 한석봉의 어머니는 불을 끈 캄캄한 방에서 아들과 서로 겨루게 됩니다. 어머니는 떡을 썰고 석봉은 글씨를 쓰지요. 그리고 다시 불을 켜고 확인합니다. 어머니가 썬 떡은 가지런하지만 석봉의 글씨는 삐뚤어지고 크기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석봉은 어머님의 솜씨에 비교해볼 때 자기의 글씨가 아직 멀었다는 것을 충격적으로 깨닫는 것이지요.


 물론 이 게임은 공정한 게임은 아닙니다. 나도 붓글시를 쓰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떡은 손으로 만져보면서 썰 수 있지만 글씨는 만져보고 쓸 수가 없지요. 그렇긴 하지만 석봉의 어머님은 매우 훌륭한 교육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하지 않고 시키기만 하는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환경만을 만들어주는 맹모에 비해서도 훨씬 뛰어난 어머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직접 자신의 일면을 자식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 교육적 효과는 차치하고라도 참된 스승의 모습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7) 노자와 물

 '노자' 마지막 장인 제81장의 마지막 구가 '천지도 이이불해 성인지도 위이부쟁(天之道 利而不害 聖人之道 爲而不爭)'입니다. "천지의 도는 이로울지언정 해롭지 않고, 성인의 도는 일하되 다투는 법이 없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물은 결코 다투는 법이 없습니다. 산이 가로막으면 멀리 돌아서 갑니다. 바위를 만나면 몸을 나누어 비켜갑니다. 곡류(曲流) 하기도 하고 할수(割水)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가파른 계곡을 만나 숨 가쁘게 달리기도 하고 아스라한 절벽을 만나면 용사처럼 뛰어내리기도 합니다. 깊은 분지를 만나면 그 큰 공간을 차곡차곡 남김없이 채운 다음 뒷물을 기다려 비로소 나아갑니다. 너른 평지를 만나면 거울 같은 수평을 이루어 유유히 하늘을 담고 구름을 보내기도 합니다.


 물이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는 뜻이며, 또 가장 약한 존재임을 뜻합니다. 가장 약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물입니다. 민초가 그렇습니다. 천하에 물보다 약한 것이 없지만 강한 것을 공격하기에 이보다 나은 것은 없으며 이를 대신할 것이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78장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물이 강한 것을 이길 수 있는 이유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 '바다'입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입니다. 낮기 때문에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바다'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지요. 큰 강이든 작은 실개천이든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임으로써 그 큼을 이룩하는 것이지요. 제66장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이기선하지(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바다가 모든 강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더 낮추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 구절의 선()은 well이 아니라 more로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8) 범죄행위 vs 불법행위

 현재 우리 사회에는 범죄와 불법 행위라는 두 개의 범죄관이 있습니다. 절도, 강도 등은 범죄 행위로 규정되고, 선거사범, 경제사범, 조세사범 등 상류층의 범죄는 불법 행위로 규정됩니다. 전혀 다른 두 개의 범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소위 범죄와 불법 행위는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이나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도 전혀 다릅니다. 범죄 행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매우 가혹한 것임에 반하여,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더없이 관대합니다.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그 인간 전체를 범죄시하여 범죄인으로 단죄하는 데 반하여,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그 사람과 그 행위를 분리하여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만 불법성을 인정하는 정도입니다. 이것은 주나라 이래의 관생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역설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법가의 법 지상주의가 인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군주를 위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폄하하고 과거의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옳은 태도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태도는 우리의 현실은 물론 사회 구조에 대하여 매우 허약한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9) 임금의 두 자루 칼

 임금이 신하를 제어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의 수단(자루)이 있을 뿐이다. 두 가지 수단이란 형()과 덕()이다. 형과 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형이라 하고, 상을 주는 것을 덕이라 한다. 신하 된 자는 형벌을 두려워하고 상 받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임금이 직접 형과 덕을 행사하게 되면 뭇 신하들은 그 위세를 두려워하고 그 이로움에 귀의한다.


 원문은 소개하지 않습니다만 위의 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세상의 간신들은 그렇지 아니하다. 자기가 미워하는 자에게는 임금의 마음을 얻어서 즉 임금을 움직여서 죄를 덮어씌우고, 자기가 좋아하는 자에게는 역시 임금의 마음을 얻어서 상을 준다. 상벌이 임금으로부터 나가지 않고 신하로부터 나가면 임금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하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신하를 따르고 임금을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임금이 형덕을 잃은 환란이 그와 같다. 호랑이가 개를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발톱과 이빨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발톱과 이빨을 개에게 내어주어 그것을 쓰게 한다면 호랑이는 반대로 개에게 굴복당할 것이다.


10) 인의 장막

 자어가 상나라 재상에게 공자를 소개했다. 공자가 (재상을 만나고) 나오자 자어가 들어가서 (재상에게) 공자를 만나본 소감을 물었다. 재상이 말하기를 "내가 공자를 보고 나니 자네가 마치 벼룩이나 이처럼 하찮게 보이네그려. 나는 공자를 임금께 소개해드리려고 하네." 자어는 공자가 임금에게 귀하게 여겨질까 두려워서 재상에게 말했다. "임금께서 공자를 보시고 나면 장차 임금께서 재상님을 벼룩이나 이처럼 여길 것입니다." 그러자 재상은 다시는 (공자를 임금께) 소개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인의 장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임금이 어진 사람을 만날 수 없도록 하는 측근들의 이해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한비자는 군신 관계는 이해관계에 있어서 서로 대립적이라고 파악합니다. 신하는 어떻게 해서든지 군주를 속이고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며 무사안일을 추구하고 복지부동한다는 것이지요. 반대로 군주는 이들 신하들을 철저히 독책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하가 군주의 이목을 가리는 것, 신하가 국가의 재정을 장악하는 것, 군주의 승인 없이 신하가 마음대로 명령을 내리는 것, 신하가 사람들에게 사사로운 은혜를 베푸는 것, 신하가 파당을 조직하여 군주를 고립시키는 것 등 신하가 군주를 가리는 일이 거듭되면 군주가 고립되고 실권하는 것은 물론이며 급기야 국가가 찬탈당하게 된다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책장을 덮으며] 

 저는 고전에 관심이 많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근본에 대한 성찰을 깨우쳐주는 고전은 계속해서 큰 가르침으로 남게 됩니다. 이 책은 신영복 교수님이 출소하고 난 이후, 성공회대에서 '고전 강독'이라는 강좌로 진행되었던 강의 내용을 정리한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무엇보다 바람직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경계해야 하는지? 또는 현재 리더의 자리에 있다면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던 좋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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