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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Jan 23. 2023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

소통은 눈높이를 맞추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최근 재미있게 읽은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라는 책에서 인상 깊은 글과 사진을 봤습니다.

저자인 최재천 국립생태원장님께서 어린이에게 무릎을 꿇고 시상을 한 장면이었습니다.

[2016년 5월 15일 ‘우리 들꽃 포토에세이 공모전’ 시상식에서]


 국립생태원장으로 일하던 시절 내가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한때 퍽 유명해진 적이 있다. 2016년 5월 15일 ‘우리 들꽃 포토에세이 공모전’ 시상식에서 키 큰 고등학생들에게 상을 주던 나는 고등학생 오빠들 뒤에 쭈뼛거리며 서있는 작은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가족 부문 장려상을 받으러 올라온 아이였는데 큰 아이들을 올려다보며 상을 주다가 갑자기 눈을 내리깔며 상을 주려니 왠지 어색했다. 무슨 이유에서 그랬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그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마 그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는 순간 흠칫했다. 하지만 내가 환하게 웃자 따라서 배시시 웃었다.

 우리 직원이 이 장면을 찍은 사진이 우연히 소셜 미디어에 알려지며 엄청나게 많은 댓글이 달렸다. 어쩌다 나는 겸손과 배려의 아이콘이 되었다. 얼떨결에 꿇은 무릎이지만 사실 나는 줄곧 바로 이 마음으로 생태원을 경영했다. 단 한 차례도 나는 직원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언제나 눈높이를 같이하며 함께 일했다. 나를 따르라고 부르짖기보다 “이런 문제가 생겼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 쉽사리 내 의견을 말하기보다 좀 더 많은 직원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이를 악물로 들었다. 절대로 군림(君臨)하지 않고 군림(群臨)하려 노력했다. 3년 2개월 동안 나는 진정 홀가분하게 일했다.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극을 보면 왕은 신하들보다 높은 용상에 올라가 있습니다.

왕은 신하를 내려다보고, 신하는 왕을 올려 봅니다.


군대 사열을 보더라도 임석상관은 높은 단상에서 부대를 내려다봅니다.

부대는 임석상관을 올려 보아야 합니다.

임석상관은 부대를 격려하기 위해 단상을 내려와서야 부대와 눈높이를 맞출 수 있습니다.

단상을 내려와 소통하는 것을 엄청난 격려라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권위적인 상황임을 인정하는 반증입니다.


회사는 조금 다릅니다.

상사는 앉아서 보고를 받고, 직원은 옆에 어정쩡하게 서서 보고를 합니다.

상사를 내려다보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직원은 상사 옆에 쪼그려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래도 상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앉아서 보고를 받습니다.

자리가 곧 권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스탠딩 데스크를 사용합니다.

하루 종일 서서 근무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서 근무를 합니다.

직원들이 저에게 와서 말을 걸더라도 눈높이가 같아 서로가 편안합니다.

함께 봐야 할 자료가 있다면 제 책상에 놓고 함께 보면 됩니다.

제 책상이 회의 테이블로 변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제 책상은 테헤란로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출근을 많이 하는 날에 저는 제 책상이 아닌 가장 복도 쪽,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스탠딩 데스크에서 근무를 합니다.


제가 무엇을 하는지 직원들이 볼 수 있도록,

직원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자리에 위치하여 직원들이 언제라도 편하게 와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모두가 꺼리는 출입구 앞 복도 첫 번째 자리에서 근무를 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저와 대화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직원들과의 격의 없는 대화를 추구하는 저의 마음은 항상 한결같습니다.


공감이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이라면,

소통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씩 복도 첫 번째 자리에 있는 스탠딩 데스크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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