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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윤리의 역설

강요된 규범과 자발적 응답

by 하진
flight-7491287_1280.jpg ⓒ Pixabay

우리는 흔히 논리와 감성을 앞세워 상대를 움직이려 한다. 윤리도 그렇다. 그러나 강한 설득은 강한 반발을 불러온다. 상대가 스스로 설득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거부감만 남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다만 경험할 기회를 내어주었을 때, 사람은 스스로 길을 찾아간다.


윤리는 아픈 순간을 거쳐야 비로소 싹튼다. 억지로 주입된 도덕은 곧잘 무너지고, 체험 속에서 우러난 깨달음만이 오래 남는다. 그렇기에 윤리의 실현은 설득이 아니라 느끼게 함에 있다. 결국 가장 큰 설득은 ‘설득하지 않는 것’이라는 역설 속에 놓여 있다.


오늘의 세계는 울리거나, 웃기거나, 불안하게 만들어야만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과연 이 방식이 윤리적 삶의 토대를 마련해줄 수 있는가? 사람들은 잠시 주목할 수는 있어도, 지나친 자극 앞에서는 곧 피로감을 느낀다. 이 또한 ‘설득의 역설’이자 ‘윤리의 역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런 과잉이 있어야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된다. 인간의 심리 구조를 보면 우리는 늘 순응과 반항 사이를 오간다. 순응이 길어지면 반항을 갈망하고, 반항이 지나치면 다시 순응을 원한다. 윤리 또한 이 진자운동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균형을 갈망한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건 질문이다.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순간, 윤리는 다시 살아난다.

“나는 진짜 삶의 가치를 쌓아올릴 것인가,
아니면 단기적 자극에 휘둘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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