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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존재의 가벼움에 무너진 자들을 위해

by 하진
ⓒ Pixabay

내가 철학 개념을 고안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문학이었지만, 그 무렵 만난 사람의 영향도 컸다. 그의 모토는 “남들을 위해 살자”였고, 나의 모토는 “내가 옳다고 믿는 길을 간다”였다. 정반대의 신념으로 우리는 늘 부딪혔지만, 이상하게도 묘한 끌림이 있었다.


그는 남을 위해 자신을 소진시키는 열정을 지녔고, 폭력에 누구보다 민감했다. 그만큼 깊이 고통받고 있었다. 사회에 꼭 필요한 이들이 정작 가장 먼저 사라진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문학의 형태로 돌아왔고, 나는 오래 외면해 온 얼굴들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욕망이 없다고 믿었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욕망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실현 불가능해 잊힌 꿈이었다. 내가 바라는 세계는 단순했다. 연명으로 고통을 늘리지 않고, 책임과 신뢰가 지켜지며, 살아갈 이유와 희망이 주어지는 곳.


현실은 냉혹하다. 특이하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되고, 쓸모없다는 낙인을 찍힌 인간은 폭력의 체계를 지탱하는 희생양이 된다. 도덕은 종종 권력의 언어로 작동하며, 선함은 때로 타인을 억압하기 위한 또 다른 장치로 변모한다. 정신병이란 개념 자체가 허상일 수 있다는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다.


누구든 정해진 질서에서 벗어나는 순간 ‘정신병자’라는 낙인을 감당해야 한다. 나는 그 모순 앞에서 늘 물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죽음을 선택할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가장 잔혹한 폭력 아닌가.


돈이 행복을 보장한다는 믿음은 여전히 굳건하다. 그러나 정작 돈을 벌기 위해 순간의 행복을 포기하고, 더 큰 고통을 감내하는 모순은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다. 문학과 철학, 광기의 기록이 결국 같은 자리에 닿는다는 사실을 끝내 외면한다.


누군가는 존재의 무거움에 짓눌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존재의 가벼움 속에서 무너진다. 무거움은 위로라도 받지만, 가벼움은 이해조차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언젠가는 이해되지 않는 고통마저도 서로에게 공명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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