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와 뭉크는 왜 미치광이로 불렸는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멜랑콜리를 창조와 천재성의 조건으로 보았다. 설명하기 어렵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슬픈 감정은 ‘은혜로운 광기’라 불리기도 했다. 위대한 철학자와 예술가는 멜랑콜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으며, 오히려 그 멜랑콜리 속에서만 천재가 탄생한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우울은 창조의 원천이기도 하다. 가령, 고흐와 뭉크 같은 화가들은 생전 내내 미치광이 취급을 받거나 고통에 시달렸다. 그러나 후대는 그들의 흔들리는 붓질과 불안한 시선을 예술의 최고 성취로 부른다. 고통 속에서 길어 올린 감각이야말로 새로운 색채와 형상을 낳았던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작품은 미술관의 가장 깊은 자리에 걸려 있고,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 부른다.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고흐는 원래 성직자가 되려 했으나, 대신 화가의 길을 택하며 세상과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생활은 늘 궁핍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1886년 파리로 건너간 고흐는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리며 비로소 자신의 색채를 발견한다. 강렬한 노랑, 휘몰아치는 붓질, 흔들리는 시선. 그러나 화폭에 빛이 선명해질수록, 그의 내면은 더욱 짙은 어둠에 잠겨갔다.
불안과 우울에 휘둘린 끝에, 고흐는 귀를 잘랐다. 그것은 그의 삶이 얼마나 벼랑 끝에 몰려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병원에서도 그림을 멈추지 않았다.「해바라기」는 빛을 향한 갈망이,「별이 빛나는 밤」은 흔들리는 혼란의 파동이 담겼다. 세상은 그를 버렸지만, 죽음 이후 그림이 세상을 대신 압도했다.
뭉크 역시 고통과 함께 걸었던 화가였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인류에게 가장 두려운 두 가지를 물려받았다. 하나는 허약함, 다른 하나는 정신병이다.” 뭉크는 다섯 살 무렵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곧이어 누이마저 같은 병으로 잃는 아픔을 겪었다.
소중한 이들과의 이별은 내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뭉크는 그것을 화폭으로 옮겼다.「병든 아이」는 누이에 대한 기억이고,「절규」는 그의 불안 그 자체였다. 그는 핏빛 하늘 아래서 자연을 꿰뚫는 하나의 절규를 들었다고 기록했다. 그 순간의 환각적 경험은 화폭에 그대로 옮겨졌다.
고통과 슬픔은 인간을 무너뜨리지만, 역설적으로 창조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정신병과 예술의 차이는 작품 안에 있지 않다. 그 차이를 가르는 기준은 사회적 수용, 그리고 고립된 목소리에 끝까지 귀 기울여준 단 한 사람의 응답이다. 어떤 기적은, 바로 그 한 번의 응답에서 시작된다.
예술과 정신병의 차이는 무엇인가.
왜 망상은 병리로, 상상은 예술로 불리는가.
경계는 작품 안에 있지 않다.
결국, 그것을 가르는 것은 사회적 수용.
그리고 상징계가 허용한 작은 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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