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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실현 불가능한 꿈

세계가 몰래카메라처럼 느껴질 때

by 하진
ⓒ Pixabay

세상이 나만 빼고 굴러가는 몰래카메라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모든 풍경은 제자리에 있는 듯한데, 나만 그 틈에서 넘어지고 쓰러지는 기분이다. 어떻게든 진심을 붙잡아 보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건 잠깐의 무기력과 텅 빈 시간뿐이라 결국 잠을 자거나 글을쓰거나 책을 읽는다.


유튜브에서 같은 영상이 반복 재생되는 걸 멍하니 보다 보면 나도 정신이 나갈 것 같지만, 그래도 부디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구도 이방인이 아닌 장소, 철학과 문학이 섞이는 세계, 감옥에 갇힌 사람에게도 뉘우치고 울 기회가 주어지는 곳. 노력하는 사람들만 ‘이방인’이 되고 결과로만 평가하는 사회가 잘못됐다는 것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세계가 왔으면 좋겠다.


알베르 카뮈의 글을 읽을 때 혼란스러운 건 내용이 자꾸 바뀌는 듯한 느낌인데, 도대체 이게 무슨 현상인지 알 수 없다. 왜 자꾸 배우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경험은 너무나 생생해서 잊지 않으려 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길을 헤매는 ‘존재와 달리’들은 얼마나 속상할까.


그래서 나는 그냥 글을 쓴다. 결국 누군가는 총구를 당겨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고, 핵을 쏘아야 하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면 그 무게를 누가 견디겠는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만 방청객으로 남는 사회라면, 참다 참다 무너져 총구를 당기는 사람에게 분노를 쏟는 것이 과연 잘못일까 하는 뻔뻔함마저 상상하게 된다.


잊히길 바라는 사람이 죄인일 리는 없을지도 모른다. 슬픔에 억눌리고 고통에 발악하다 권총을 당기게 된 ‘존재와 달리’를 우리는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무력감이 밀려와도 나는 계속 말한다. 힘내라, 희망을 잃지 말라. 실수하는 것은 당연하고 뒤늦게라도 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끝없이 이어지는 불길 속에서 타들어가는 고통이 없는 곳, 책임과 신뢰가 주어지는 곳을 바라고, 총은 어디로 향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놓지 않으려 한다. 돌멩이가 되어 바다 밑에 묻히고 싶다는 마음은 외계인이든 인간이든 똑같이 한 번쯤 해보는 상상일 테니, 그래도 나는 누구나 뒤늦게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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