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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물고기들의 윤리

어항 속 잔혹한 아름다움

by 하진
goofy-4351827_1280.jpg ⓒ Pixabay

텅 빈 어항, 곧 결핍의 자리에서만 시간이 흐른다. 그 많던 물고기들이 모두 사라지고 그것과 나만이 남아 멈춘 그 자리가, 역설적으로 내가 앞서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여름은 결국, 세계의 공백을 응시하며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계절이었던 셈이다.


세 마리의 물고기가 도착한 시점에서, 관찰은 시작된다. 나는 그것을 기록한다. 기존의 집단이 전멸한 후에야, 세 개체는 상호 배제 행위 없이 공존하는 양태를 보였다. 귀여운 물고기들은 약한 입질 행위를 보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상호 생존 확인 및 보호 행위를 지속하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1) 10월 6일

한 마리는 죽은 척을 통해 주인의 관심을 끈다. 빤히 쳐다보면 금세 정신을 차리는 모습은 이 개체가 타고난 연기꾼인지, 아니면 정말로 고통받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도착 시점부터 유난히 연약했던 이 물고기를 두고, 나머지 두 마리는 이를 살려야 하는지 아니면 외면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나는 그들이 모두 살기를 바라며 잠들고 싶었지만, 결국 잠은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물고기들에게 밥을 주었다. 그 약한 척하던 물고기는 어느새 다른 물고기들이 같이 연약한 척 춤을 춰주니 금방 적응한 듯했다.


(2) 10월 7일

나무껍질처럼 생겼던, 연약해 보이던 개체는 결국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다. 남들과 정반대로 행동함으로써 오히려 균형을 유지하는 존재로 태어난 것 같았다. 문득, 물고기가 주인에게 끝까지 아양떠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끝까지 도망치며 차별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전부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가장 힘이 없어 보이는 이 나무껍질 같은 물고기가 아파서 힘이 없는 것만은 아니기를 바랐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다음날 그 연약한 목숨을 스스로 끊어버렸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결국 새로운 생명이 피어났고, 새끼들은 또 다른 어항으로 옮겨졌다.


(3) 10월 8일

돌멩이처럼 굳어 있던 물고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뒤늦게 그것이 죽었음을 알았지만, 깔끔하게 소멸한 모습을 본 덕분에 오히려 행복했다. 마치, 죽음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분해하면서 이 세계를 떠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행복한 죽음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후 어항에는 수많은 새끼들이 태어난다. 이 물고기들은 요리조리 잘 피하는 천부적인 재주를 타고났다. 한편, 색깔이 비슷한 물고기 한 쌍은 심심하면 춤을 추고 거품을 만들며 재미있게들 논다. 죽음이 삶을 완성하듯, 사라진 공백은 새로운 생명들의 활기찬 춤으로 채워졌다.


어느새, 어머니의 개입 덕분에 새끼들은 안전하게 다른 어항으로 옮겨졌고, 새로운 장소를 찾았다. 새로운 생명은 때때로 보호라는 명목 아래 분리되고,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원래의 장소에서 단절된다. 나는 이 분리가 생명을 지키는 행위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인위적인 고독을 부여하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느낀다.


Point

- 정당한 고통과 행복한 죽음의 등치화가 실존의 완성.

- 약함은 극복되어야 할 대상, 혹은 더 강한 생명의 발전을 저해하는 정지 상태. [분별 및 구분]


어쩌면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손에 의해 안전하게 분리되었으나,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어항의 공백을 그리워하며 춤을 추는, 고독한 새끼 물고기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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