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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불완전한 윤리학

실수와 반성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

by 하진
books-4250085_1280.jpg ⓒ Pixabay

윤리에 필요한 준비물이 있다면 무엇일까. 단순히 ‘착하게 사는 법’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윤리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과정— 명령이나 규범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인식과 자기 통제의 훈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1) 현존재의 자각

현존재(Dasein)는 스스로 ‘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다. 윤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지 못한 윤리는 타인의 기준을 반복하는 규범에 불과하다.


(2) 윤리의 실현 불가능성에 대한 감내

윤리는 완전하게 실현될 수 없다. 인간의 한계와 상황적 조건 때문에 모든 판단은 불완전하며, 모든 선택은 잠재적 오류를 내포한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윤리적 인간상은, 결코 완전함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다만, 실패를 감내하고 반성할 줄 아는 존재다.


윤리의 지속 가능성은 완벽함이 아니라, 불안정성으로만 유지된다. 그저 “하라는 대로”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왜 해야 하는가’를 묻고, 그 이유를 이해한 뒤에 행동하는 사람이다. 타인의 명령이나 사회의 규범에 의해 움직이기보다, 스스로 납득한 책임감으로 결정을 내리는 존재다.


(3) 폭력의 자각과 조절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일정한 폭력성을 내포한다. 폭력은 본질적으로 타인에 대한 지배 충동이나 공격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보존의 본능, 좌절에 대한 반응, 혹은 감정의 표출로 나타나는 에너지의 한 형태이며, 윤리는 이 폭력성을 부정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를 인식하고 조정하는 과정이다.


(4) 윤리 체계의 유연성

윤리는 일정한 원칙을 필요로 하지만, 그 원칙이 지나치게 경직될 경우 그 자체가 새로운 폭력이 될 수 있다. 사회적 규범이 지나치게 세밀하고 강제적으로 작동하면 윤리적 실천은 오히려 타율적 복종으로 변질된다.

윤리 체계는 완성된 틀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수정 가능한 열린 구조여야 한다.


(5) 금지와 욕망의 관계

부정 명령의 형태를 취하는 것들은 대체로 매력적이다. 따라서, 내 생각에는 금지가 없다면 욕망도 형태를 갖지 못한다. 문제는 금지를 넘어서려는 욕망이 어떤 방향으로 발현되는가에 있다. 그것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면 폭력이고, 공동체의 이해를 확장한다면 혁신이다. 이 지점에서 독재자와 영웅의 차이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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