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와 존재의 고독
언어로 세계를 갈라내고, 사유로 존재를 다시 써 내려간 사람이 있다. 극작가이자, 소설가. 그리고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다. 그는 세계 대전의 폐허 위. 무너진 신념과 꺼져버린 신 앞에서, 더는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시대의 질문을 맨몸으로 마주하기 위해 글을 썼다.
그의 철학은 좁고 눅눅한 방 안, 축축한 벽지 너머로 스며들던 공기의 무게. 피부와 시선, 고요한 체념과 끓어오르는 울렁임 사이에서 조용히 시작되었다. 존재란 무엇인가를 묻기 전, 이미 존재로 인해 고통받는 인간을 먼저 바라본 그에게 있어서 철학은 “살아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장 폴 사르트르의《구토》는 인간이 가장 자유로워지는 순간, 되려 절망과 고독을 마주하는 내용이 담겼다. 나의 존재를 논리가 아니라 냄새와, 고독과, 도시의 적막으로 깨닫게 되는 장면. 그래서 문장과 단어를 이해하려는 시도 대신, 그 너머에 깃든 허무와 자유의 결을 따라가야 한다.
소설 속에서 도시는 마치 한 점의 인상파 화폭처럼 스쳐 지나가고, 번지다가, 마침내 증발한다. 주인공은 더 이상 자신의 자리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장면이 자기 존재를 진정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무언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다.”
L'homme est condamné a être libre.
- 장 폴 사르트르
설명되지 않는 떨림.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역겨움은 존재가 너무 가까이 다가왔다는 신호다. 말보다, 개념보다 앞서, 몸이 먼저 기억해 버린 진실과의 대면.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또 다른 속박을 마주하는 일이다.
눈 앞의 사물들이 너무 조용했을 뿐이다. 그러나 모든 침묵과 낯섦이, 이유도 없이 그저 존재하고 있었다. 그 조용함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선명하게 느껴지는데, 익숙함보다도 더 가까웠다.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는 투명한 자각 속에서 더 이상, 이전의 방식으로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유를 마주한다는 것. 그건 더 이상,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다는 단호한 단절이다. 그 앞에 선 이상, 도망칠 수 없다. 선택은 이미 시작되었고, 되돌아갈 길은 사라졌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수용하는 일이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 앞에서는 누구도 감히 입을 열 수 없다. 남는 건 오직, 울렁임과 지워지지 않는 메스꺼움.
존재는 너무 가까웠고, 자유는 너무 투명했다.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었고, 그 무게는 누구도 대신 짊어질 수 없었다. 인간은 고독했고, 그 고독에서 끝내 도망칠 수 없었다. 그 진실을 마주한 순간, 설명되지 않는 메스꺼움이 천천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속이 뒤틀리는 혼란 속에서ㅡ 그는, 결국 구토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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