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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7.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날것의 사람들

미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

by Azuree

운전 면허 연수를 받기 위한 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직장과 별개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사람들은 직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보다 더 ‘날 것’ 이었다.


비록 나는 아직도 운전 연습면허 신세지만 – 생각해 보니 그것도 오늘 만료다 - , 한 때 Full License를 따기 위해 정말 미친 듯이 노력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브레이크와 엑셀도 헷갈리는 상태에서 영어로 연수를 받으면 정말 사고 한 번 크게 낼 것 같았다. 그래서 은퇴하신 메릴랜드 운전연수 계의 고수(이하, ‘미스터 안’) 를 구글링으로 찾아내어 한국어로 연수를 받기로 결심했다.


재야의 고수 미스터 안 선생님은, 나의 운전 실력에 대해 추가 연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셨고 – 미스는 아직 운전하면 안돼!-, 이는 내 배우자 및 시댁의 평가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늘어나는 연수 횟수에 주머니는 텅텅 비어갔다. 그래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몇 군데 면접을 봤고, 합격한 곳 중 가장 그나마 체계가 있어 보이는 곳에 출근하기로 했다.


내가 출근한 곳은 유흥시설 안에 있는 카페였고, 내부 음식점 손님 응대와 서버, 호스트를 상대해야 하는 괴상한 곳이었다. 우아하게 에스프레소 샷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점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과 동료가 늘어갔다. 그 덕에 ‘직장 사람들은 그래도 사람 좋은 ‘척’이라도 하는구나’라는 교훈을 얻었다. 그 정도로 아르바이트에서 마주치는 그들은 ‘날 것’ 그 자체였다. 그 중 대표 케이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A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팁을 받지 못하면 매장을 나가는 손님을 쫓아가 다그치는 호스트였다. 그런 경우를 건너 건너 듣긴 했지만 실제로 손님의 면전에서 손님이 남긴 팁을 들이밀며 ‘더 달라’고 요구하는 A는, 나에게도 대하기가 힘든 존재였다. 유흥시설 특성상 손님들이 현금이나 카드보다는 시설 자체 카드에 쌓인 포인트를 많이 이용하는데, 자신이 맡은 손님의 카드 프로세싱이 늦어지면 나에게 삿대질을 하고- 말 그대로 3초에 한 번씩 데스크로 와서 프로세싱이 완료되었는지 확인했다.


바텐더인 B-1은 (B-1인 이유는 추후 서술할 두 번째 바텐더인 B-2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여자 호스트 및 심지어 아르바이트에게까지 밤을 같이 보내자며 껄떡거렸다 . 뭐 B-1의 사생활이야 내가 알 바 아니지만, 제일 나를 화나게 했던 것은 그가 보통 6시간을 지각한다는 것이었다. 6분도, 60분도 아닌 6시간. 나는 바리스타로 채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에 자리하여 레시피를 보며 그가 올 때까지 기약없이 칵테일을 제조해야 했다. 그는 바쁠 때는 담배를 핀다며 사라지고 한산한 때에는 혼자 술을 들이키는, 내 기준 미친놈이었다.


B-1이 해고되고 B-2가 바텐더로 들어왔다. B-2는 심각한 약물 중독자이자 알코올 중독자였다. 근무 시간에는 약을 못하기에 그는 일하는 시간 내내 바에 있는 온갖 술들을 본인의 것인 마냥 들이켰고, 자신의 기분이 내킬 때마다 꽁짜로 바에 앉은 손님들에게 술을 뿌렸다. 심지어 만취된 나머지 흥에 겨워 (?) 손님과 싸우기도 했다. 맹세코 나는 단 한번도, 일하는 기간 내내 B-2가 술에서 깨어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C는 남미에서 온 Busser로, 정말 시설 내 모든 남자들에게 유혹의 눈길을 보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이미 매장 내 다른 남미 남자와 사귀고 있었고, C가 어떠한 말다툼 후 그 남자를 패서 (다음날 남자는 너무 맞은 관계로 출근하지 못했다) 헤어졌지만 아직도 (어쩔 수 없이) 같이 살고 있다. 그녀의 사생활과 별개로, 매장 차원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C가 호스트 행세를 한다는 것이었다. C는 남미 고객이 오면 호스트보다 먼저 그 테이블에 달려가 자신이 팁을 받아야 하는 것 마냥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적극적으로 그들을 응대했다. 결국 C는 다양한 이유로 해고되었고, 지금은 국밥집에서 일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나는 이 매장에서 약 1년을 일했고, 동료들의 잦은 해고로 인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대타를 뛰느라 결국 미스터 안에게 완벽한 운전 실력을 사사받겠다는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그 결과 아직도 정식 면허를 따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미국의 한 면모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만족하려고 한다. 면허는 나중에도 딸 수 있지만, 이러한 날것의 사람들은 또 언제 만날 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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