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수 개인전 - 버리는 것들이 얻게 하는 것

집안일이 하기 싫을 때

by 필그림

집안일, 하기 싫고 해도 해도 적응이 안 된다. 잠시 깨끗해지는 것을 즐기기에는 너무나 빨리 다시 쌓이는 끝없는 딜레마. 집안일을 하기 싫어 자꾸 도망가는 나 자신을 타이르듯 글을 써 본다.


정연수 개인전에서는 페트병, 설거지통, 빨래통 등을 그렸다. 작가는 버리는 것들을 통해 중요한 것과 남겨야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고 하였다. 말괄량이로만 보던 집안일을 그림으로 들여다보고 의미를 생각해보니 새로운 생각이 든다.


내가 하기 싫어하는 냉장고 정리에는 정결의 의미가 있다. 집은 음식을 내가 생각하는 이상 대로 깨끗하게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모두에게 공용으로 비치된 순댓국집의 깍두기, 언제 재활용될지 몰라 보이는 밑반찬들을 보다 집 냉장고가 깨끗하면 그것만으로 힐링이다. 냉장고 속의 음식들을 치우면 삶이 반질반질 빛나는 정결함을 얻는다. 마음을 번민하게 하던 생각들은 다정함과 가지런함으로 다시 한 번 부딪힌다.


정리되지 않은 세상 속에 우리는 산다.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제도들, 우리의 문서함들, 사무실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리 간의 관계들도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이럴 때 냉장고 정리를 통한 정결함의 추구는 삶에서 드리는 예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설거지는 마치 우리의 입을 씻는 행위 같다. 우리의 입은 오늘 하루 얼마나 더러웠는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마음으로 생각으로 죄를 짓는 하루를 보낸다. 마음의 입, 생각의 입을 설거지처럼 한 번에 촤아 하고 날려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들이 선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설거지는 회개와도 비슷하다. 내 입을 거친 것들이 더러웠다는 것을 인정하며 가지런히 씻어내는 일. 국가대표급 죄인인 나는 설거지를 싫어한다. 매일 반복되는 죄 지음이 주는 초라한 기분과 매일 닦아도 여전히 쌓이고 반복되는 설거지가 참 싫다. 그러나 회개 후에 오는 하나님와의 더욱 달콤해진 시간이 말해주듯 설거지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 시간부터는 내려놓아보는 것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청소. 청소는 내가 누비고 다닌 자리를 깨끗이 하는 행위다. 청소는 항상 죽음을 생각나게 한다. 자기의 유산을 정리하고 유품을 미리 처분하는 우리들의 모습, 청소는 내가 사용한 자리에 대한 반납이고 우리의 사라짐을 함축한다. 아직은 내 자리, 내 궤적을 어딘가에 묻혀놓고 싶은 나는 청소도 싫어한다. (좋아하는 집안일이 뭔가를 만들어 나를 내놓듯 내어놓는 요리밖에 없으니, 나는 한참 더 수양해야 한다)


냉장고 정리와 설거지, 청소. 조금 더 마음을 비우고 나를 주장하지 않고 다만 내 영혼을 조금 더 깨끗하게.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는 행위는 정말로 작가의 말처럼 중요한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주었다. 영혼을 채우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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