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과 타이프]
멀리서 누군가가 울고 있다. 숨죽여 흐느끼는 듯한 가느다란 그 울음소리를 나는 천천히 들이마셨다가 내뱉는다. 타인의 숨결이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누군가의 슬픔이 내 안에 한 겹 쌓이는 기분이 든다. 원래 서 있던 곳으로부터 몇 계단 아래로 내려온 것 같기도 하다. 울음소리 외에는 사방이 고요하다. 나는 그것을 온몸으로 듣는다.
언젠가 아주 어렸을 때, 저것과 비슷한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무더운 여름밤이었다. 나는 거실 한 쪽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지만 잠이 들지는 않았었다. 베란다 창문을 전부 열어둔 거실은 어두컴컴했다. 구석에 놓인 텔레비전 화면만이 흑백의 입자를 반짝거리며 사위를 밝히고 있었다. 그 앞에서 아버지와 고모부가 그림자를 벽에 길게 늘인 채 마주앉아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나는 잠결에 뒤척이는 시늉을 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형님, 술을 마시지 않은 날엔 티비라도 켜놓지 않고서는 도저히 잠들 수가 없어요……. 말끝을 흐리며 고모부가 소리 죽여 흐느꼈다. 아버지는 말없이 소주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끊임없이 지지직거리는 화면의 옅은 빛 속에서 고모부의 수그린 어깨와 등이 들썩였다. 그 너머로 창가에 피워놓은 모기향이 가느다란 연기를 피워 올렸다. 고모부의 낮은 울음소리와 텔레비전의 반짝이는 입자가 뒤섞여 여름밤의 꿈처럼 내 의식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꿈결인 듯 눈을 감았다, 떴다 했다.
그때로부터 몇 달 전, 고모부는 나랑 비슷한 또래였던 아들을 잃었다. 나보다 서너 살이 많았던 내 사촌오빠는 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는 지역이 달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각자 아끼는 책을 빌려주며 나랑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오빠는 엄청난 독서광이었는데, 어쩌다 만나게 되는 날이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서점으로 달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구경했다. 장례식과 화장장에는 우리 가족 중 아버지만 혼자 다녀왔다. P야, 살아야 한다. 꼭 살아야 해.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끼고 있던 오빠는 내 아버지의 간절한 목소리에 네, 네, 하고 힘겹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이 모든 얘기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 자살은 그의 집안 내력인 것 같기도 했다. 고모부의 어머니도, 젊은 시절 오랫동안 배를 탔다던 고모부의 형님도, 전부 자기 손으로 세상과의 연을 끊었다고 했다. 뒤돌아보지 않고 단숨에 뭔가를 놓아버리는, 피(血)로부터 물려받은 모진 습성이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슬픔 역시, 가계로부터 이어져 온 내력인지 모른다. 사촌오빠의 죽음이나 자식을 잃고 흐느끼는 고모부의 애달픈 울음소리가 아니더라도, 나는 뚜렷한 이유 없이 종종 깊은 무력감과 함께 알 수 없는 절망에 빠지곤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는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살다가 떠났는지를 낱낱이 기억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증언하고 싶어졌다. 크리스마스트리의 꼭대기에다가 별 모양의 장식을 달 듯, 그들이 살다가 떠난 곳에 작지만 반짝이는 표식을 하나하나 달아주고 싶다고. 그건 무척 고되고 외로울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감당하고 싶은 일이었다.
* 윤대녕 작가의 단편소설 제목에서 빌려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