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과 타이프]
가장 뜨거운 순간에 나는 늘 맨발이었다.
어느 겨울날, 대학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다가오던 즈음이었다. 한 학기 동안 내가 지내던 기숙사 앞 휑한 잔디밭에도 여기저기 눈이 쌓이고, 사람들이 오가는 좁은 길은 반질반질하게 윤이 난 채 얼어붙어서 가로등 불빛만 반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숙사 건물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길모퉁이 어딘가에 얇은 티셔츠 차림의 내가 서 있다. 슬리퍼조차 신지 않은 맨발로, 발바닥에 그대로 전해져오는 냉기와 싸우느라 덜덜 떨면서. 누가 나에게 그러고 있으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삼십 분이 넘도록 눈밭 위에 맨발로 서 있다.
그때 나는 나 자신에게 벌을 주는 중이었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리 기억해내려 애를 써도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웠던,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었던 어떤 결백한 마음만이 떠오를 뿐이다. 정말로 그만한 벌을 받을 일이었는지의 여부도 사실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단지 마음속 한 점의 얼룩조차 허용하지 않으려는, 스스로 정한 기준과 잣대에서만큼은 깨끗하고 싶었던 그때의 내 모습이, 나의 삶에서 가장 뜨거운 동시에 얼음처럼 투명하게 빛나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뿐이다. 12월의 눈밭 위에서 조금씩 얼어붙어 가던 맨발, 그 어느 때보다 단단했던 내 마음. 지금의 나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