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피타고라스는 정수비로 표현할 수 없는 무리수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이 믿는 조화로운 세계를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음이 다 뭉개지잖아. 요즘 왜 이럴까?”
교수님이 그랜드 피아노의 보면대를 볼펜 몸통으로 내리쳤다. 볼펜의 가벼운 플라스틱이 육중한 피아노에 부딪히며 내는 파열음에 설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렇게까지 화를 내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손끝에 체중을 더 실으라고. 선명하게.”
오늘따라 아무리 애를 써도 손끝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교수님은 악보를 앞장으로 거칠게 넘겼다.
“다시. 이 부분부터.”
레슨실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악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손이 정신과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템포, 템포!”
교수님의 언성은 점점 높아지고, 볼펜으로 피아노를 치는 박자의 속도도 빨라졌다. 설이의 손은 볼펜의 박자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갈수록 왜 이러니? 콩쿠르 나가고 싶다며. 이래서는 콩쿠르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실기고사가 문제다.”
설이는 고개를 숙이고 건반 아래 놓인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비해 연습 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요즘 들어 흐려진 소리에 조바심이 났고, 오늘도 아침잠을 줄여가며 새벽부터 피아노 앞에 앉아 손을 풀고 왔다. 어떤 날은 조금 나아진 듯했고, 또 어떤 날은 그대로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교수님,”
설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입을 열었다.
“요새 손이 이상해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순간 ‘아’와 ‘악’ 사이의 탄식이 섞인 소리를 내뱉었다.
“병원 가봤니?”
“네, 교수님. 병원에서 목 디스크가 살짝 있는 것 같대요. 뼈 간격이 조금 좁다고. 주사 치료 시작했어요.”
“그래, 괜찮을 거야”
교수님이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건물 밖으로 나서니 그가 설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자 봤어? 답장이 없길래.”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날이 서 있었다. 설이는 그제야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오늘 점심 같이 먹을래? 음대 앞에서 기다릴게.‘
“오래 기다렸어?”
“아니, 너 레슨 언제 끝나는지 아니까.”
누더기가 된 마음에서 그를 위한 사과의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 교수님이 화를 많이 내셨어.”
식당에 앉자마자 사과 대신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하소연이었다.
“힘들었겠네.”
그는 수저통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 식탁에 놓으며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요즘 설이는 피아노 때문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초조함에 시달렸고, 밤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루 종일 정신이 없다 보니 그의 연락을 제때 확인하지 못하는 일도 잦아졌다.
맞은편에 앉은 그는 설이의 눈을 마주 보고 있지 않았다.
항상 그랬듯이 누구보다 성실히 살고 있다는 사실만은 자부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을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멀리 두었던 시선을 식탁으로 내리깔고, 괜히 수저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불안한 건 알겠는데, 너무 조바심 내지 마. 살다 보면 슬럼프도 오고 그러는 거잖아. 내가 피아노는 잘 모르지만, 제자리멀리뛰기만 해도 평소보다 이유 없이 기록이 안 나오는 때가 있다고…”
그의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말투에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체대생인 그가 체육을 대하는 태도와 달리, 자신에게 음악은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제자리멀리뛰기 따위에 비교할 일이 아니라고 모진 말을 쏟아놓고 싶었다.
그에게 음악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이 있던가. 자신에게 피아노가 어떤 의미인지를 말로 꺼내어 보여준 적이 있었나. 이야기한 적도 없는 것을 알아서 이해해 주길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설이는 눈물에 젖은 턱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괜찮아질 거야. 치료받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연습을 마냥 쉬고 있을 수는 없어.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연습을 어떻게 바꿔보면 좋을지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왜였을까. 대화 주제가 음악으로 흘러갈 때마다 그의 지루한 기색을 눈치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다. 무엇이 드러내기가 두려울 정도로 은밀해야만 했던 걸까.
“너한테 피아노가 중요한 건 알겠는데,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만 되진 않잖아. 그만 울어.”
그는 휴지를 뜯어 주며 말했다.
설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사랑스럽기에는 너무 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외로울수록 마음은 더 독해졌다. 손에 움켜쥔 것을 놓는 법을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독해질수록 더 외로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수저가 식기와 부딪히는 소리만 달그락거렸다.
“너 피곤할 텐데, 내가 괜히 보자고 했네.”
그의 차분한 목소리에 피로감이 묻어 있었다.
설이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품에 안기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위로와 휴식이었다.
음악이 단 한 번이라도 지친 몸을 안아 준 적이, 떨리는 손을 잡아 준 적이 있었나. 형체도 없는 음악을 쫓으며 왜 이토록 독하게 외로운 사람이 되어야만 했던가.
그 순간에 느낀 것은 차라리 스스로를 말초적인 감각에 내어주고 싶은 충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