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워낙 많이 쓰니까 그렇지.”
손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에 엄마는 다독이듯 대답했다.
“연주자는 몸 안 아픈 사람이 없어. 설아, 아플 때는 몸 돌봐 가면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야.”
목 디스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체 이상이 계속되었다.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과로 때문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압박감만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맑고 서늘한 소리, 둔탁한 저음. 가벼운 파장, 가느다란 긴장. 균열과 하강의 소리.
눈앞에 보이는 것 하나 없이 소리의 편린만 울려 퍼지는 꿈은 계속되었다.
삐걱대는 몸을 연습으로 밀어붙이며 실기 시험장 앞에 섰다. 긴장한 마음을 달래 보았지만, 손끝에서는 결국 엉성한 연주가 흘러나오고 말았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두 다리는 힘이 풀려 가엾게 떨리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붙잡고 있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스스로를 다독이던 마음이 허망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설이는 방학 동안 하려던 레슨 아르바이트도 포기하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쉴 때조차 독하게 쉬어야 하는 자신을 보며 기가 찼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를 휴식으로 극복해 보려는 시도가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삶은 이미 납득할 수 없는 일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한 달 만에 집에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아 스케일로 손을 풀었을 때, 손은 오랜만에 편안했다. 역시 쉼이 조금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마음이 놓였다. 더 오래 쉬다가는 감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곧바로 연습을 시작했다.
방학 동안 연습해야 하는 곡 중 하나는 쇼팽의 폴로네이즈 Op. 40, No. 1. 군대라는 이름이 붙은 장엄한 곡이었다. 설이는 당차게 연습을 시작했다. 괜찮아진 것 같다는 기대가 무색하게 원하던 풍부한 음량은 나지 않았다. 웅장한 도입부의 화음을 짚기 위해 열 손가락을 힘껏 세워 보았지만, 곧 손이 무너졌다. 엄지손가락이 감기고,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우그러졌다. 뭔가 제대로 잘못됐다.
“설아, 아빠랑 통화했어. 최대한 빨리 대학병원 진료 예약해 볼게. 그때까진 너무 걱정하지 말자.”
정형외과 의사는 신경과에 가보라고 했고, 신경과 의사는 대학병원 진료를 받아보라고 했다.
한참 동안 컴퓨터를 두드리던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일 빠른 게 연말이라네. 일단 예약했어.”
연말. 연말이 오기 전에 이 악몽에서 깨어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설아,”
엄마가 안경을 벗으며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일단 다음 학기는 쉬자. 쉬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물리치료도 더 받아보고. 엄마 친구 중에 몸이 약했는데 보약 먹고 힘이 좀 났다는 애가 있었거든. 그 친구한테도 연락해 볼 테니까…”
납덩이처럼 느껴지던 건반의 무게,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공기, 속수무책으로 망쳐버린 실기 시험. 나아진 것 하나 없는 지금 상태로 다음 학기까지 다닐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말에 순순히 고개가 끄덕여지지는 않았다.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이 현실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방학 끝날 때까지 시간이 남았으니까 좀 지켜보고요. 더 쉬다 보면 나아질 수도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