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6

소설 연재

by 바달



녹아내린 눈이 땅을 적신다. 쌉싸름하고 풋풋한 흙 내음이 공기 중에 가득하다. 잔잔한 햇살 사이로 부는 바람은 미세한 냉기를 품고 있다. 초봄의 전경만큼이나 싱그러운 너의 걸음걸이를 나는 천천히 따라 걷는다. 썩어가는 지난 계절의 낙엽과 새로 자라나는 잔풀이 뒤섞인 대지는 나의 걸음걸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낯선 기척이 느껴진다. 나는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춘다. 너는 나를 뒤돌아본다.


괜찮아. 저기 사슴 보이지?


나는 네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다.


하얀 자작나무 기둥 사이로 어린 사슴 한 마리가 보인다. 사슴은 미동 없이 멈춰 서서 깊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저렇게 조용히 서서 뭘 하는 걸까.


나는 사슴이 도망가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너에게 묻는다.


우리의 체취가 바람에 실려 오길 기다리고 있겠지.


너는 익숙한 듯 대답한다.


경계심에 귀를 쫑긋 세운 어린 사슴의 눈망울에 주체할 수 없는 투명한 호기심이 깃들어 있다. 네가 다시 걸음을 옮기자, 사슴은 이내 도망쳐 버린다.


잠에서 깨어나는 숲을 느껴봐.


숨겨두었던 보물을 보여주듯 너는 부드럽게 속삭인다.


겨우내 모습을 감추었던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키고 있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던 숲에 이젠 설레는 생동감이 스며 있다. 매끄러운 자작나무 껍질은 따스한 햇빛을 받아 연한 황금빛을 띤다. 이따금씩 나뭇가지 사이로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느다란 가지가 산뜻한 손짓처럼 살랑인다.


나무는 추위를 모아서 단단한 겨울눈을 만들어.


너의 말에 나는 높이 솟은 나무를 올려다본다. 나무는 자신이 이겨낸 추위를 증명이라도 하듯 마른 가지마다 작은 겨울눈을 달고 있다. 연한 새순을 품고 있는 단단한 겨울눈. 옹기종기 돋아난 겨울눈은 모든 것이 깨어나기 직전의 찰나, 그 잔잔한 설렘을 쥐고 있다.


혹독한 추위가 저렇게 예쁜 것이 됐다고?


맞아. 나무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잠에 들지만, 또 그 추위를 가득 모아야만 잠에서 깨어날 수 있어. 그래야 겨울눈을 터뜨릴 힘을 가지게 되는 거야.


갓 돋아난 겨울눈은 봄을 기다리는 나무가 흐린 하늘을 향해 간절히 모은 두 손처럼 경건하다.


나무는 봄이 오리라는 걸 알았을까?


응, 나무는 자연의 선함을 믿고 있거든.


자연의 선함?


그래, 자연이 겨울 끝에 반드시 따스한 봄날을 돌려주리라는 사실 말이야.


그걸 어떻게 믿어?


너는 내 말에 피식 웃음을 짓는다.


따라와.


너는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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