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지구는 그 질량만큼의 존재감으로 모든 것을 끌어당긴다. 어미 오리가 자그마한 새끼 오리 한 마리도 놓치지 않듯이, 모든 생명체와 그들이 뿌리내린 흙과 바위, 그리고 숨 쉬는 공기까지도 붙들고 있다.
설이는 내딛는 걸음마다 발바닥에 닿는 지면을 느꼈다. 지구를 딛고 선 이 몸은 귓속 전정기관과 반고리관으로 한평생 지구의 중력을 해석했겠지. 때론 중력을 거스르고, 때론 중력에 의지하며 매일 무심히 몇천, 몇만 보를 걷는 동안 다리의 수많은 근육들은 그 해석만을 믿고 움직였겠지.
몸을 의식하게 되는 건 몸이 아프다는 뜻이다. 건강함을 의식해 본 적은 없었다. 자유롭게 움직이기까지의 정교한 체계를 완성해 낸 운동신경은 왜 돌연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구는 걸까. 의식하지 않아도 질서 정연하던 근육은 왜 느닷없이 통제를 벗어난 걸까.
매서운 바람에 귓바퀴가 아려오기 시작했다. 학교를 그만둔 뒤로 집 앞 산책이 하루 중 유일한 일과였는데, 이젠 그마저도 어려운 날씨가 되어가고 있었다. 돌아올 봄에는 근육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중력이 낯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처럼이라도 좋으니 계속 걸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짧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설이의 하루는 단조로웠다. 오늘도 시간을 때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습관처럼 노트북을 펴고 앉았다.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 사람처럼 인터넷에 접속했다. 조금이라도 외부와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찾으려 했던 걸까. 문득 사진 파일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 폴더를 열어 보았다. 잠들었던 시간은 사진 안에 갇힌 채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교실 칠판 앞에 옹기종기 모여 단체 사진을 찍던 방학식 날,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줄다리기를 하던 체육대회, 한껏 들떠 있던 수학여행 버스 안, 친구와 칠판에 그렸던 낙서. 어떤 아이는 수다를 떨고 어떤 아이는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교실. 그리운 얼굴들.
설이는 사진 파일 사이에서 동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화질이 흐릿한 데다 정신없이 흔들리기까지 하는 영상이었다. 왁자지껄한 친구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야, 내 차례야. 비켜.’
교실 앞에 있는 피아노를 차지하려는 아이들이 서로의 엉덩이를 밀어냈다.
‘신청곡 받는다.’
‘라 캄파넬라.’
‘아니야, 그거 너무 어려워.’
‘왕벌의 비행 쳐봐.’
‘몰라, 내가 치고 싶은 거 칠래.’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고양이 춤’이 뒤섞이며 음질이 깨지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치는 아이는 지난번에 집 앞까지 찾아와 주었던 친구였다. 지금쯤이면 유학 원서 접수도 끝났을 텐데. 설이는 오랜만에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뻣뻣한 손가락으로 쓴 문자를 전송하고 나니 금세 답이 왔다.
‘나 프리스크리닝 녹음 보낸 것 세 군데 합격했어! 다다음 주에 라이브 오디션 참가하러 미국 가.’
설이의 과거는 잃어버린 시간이 되었지만, 친구는 옛 시간을 발판으로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는 활갯짓을 하고 있었다.
‘내가 녹화한 것 너한테 이메일로 보내줄게. 민망한데 너만 보여주는 거야. 원테이크로 찍느라 진땀 뺐거든.’
설이는 다시 노트북 마우스를 움직였다. 이메일을 클릭하고 첨부된 동영상 파일을 다운로드 했다.
축하해. 항상 응원할게.
핸드폰을 집어 들어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영상을 열어 보지 않고 이내 노트북 전원을 꺼버렸다.
1) Liszt ‘La Campanella(작은 종)’. 파가니니의 곡을 바탕으로 리스트가 작곡한 어려운 기교의 곡
2) Rimsky-Korsakov ‘Flight of the Bumblebee’. 빠르고 긴장감 있는 곡.
3) 고양이의 춤. 작자 미상의 곡. 주로 검은 건반이 사용되며, 초보 연주자들도 쉽게 연주함.
4) Pre-screening recording. 지원하는 학교의 요구 양식에 따라 연주를 녹음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