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13

소설 연재

by 바달


엄마는 흰 수건을 가져와 설이의 젖은 머리카락을 감싸주었다. 수건은 금세 물기를 머금어 묵직해졌다. 수건 모퉁이가 얼굴 쪽으로 흘러내렸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어깨 위로 팔을 들어 올릴 수 없다는 사실이 이제는 익숙했다.

“이리 와, 앉아 봐.”

엄마가 서랍에서 헤어드라이어를 꺼내며 말했다. 설이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도움을 받아도 목욕은 여전히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건조한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지나 목덜미에 닿았다. 엄마의 손은 바람이 닿는 곳을 따라 분주히 움직였다. 손으로 먹이고 입히고 재워 키운 딸이 다시 아기가 되어 엄마의 품으로 돌아왔다.

“전보다는 많이 옅어졌네.”

엄마의 말에 설이도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이마에 그어진 분홍색 선 하나가 보였다. 기다란 흉터에 맨들 거리는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병원에서 몇 바늘을 꿰매고 나온 뒤로 엄마는 종종 설이의 얼굴에 흉이 지진 않을까 속상해했다. 설이는 대답 대신 묵묵히 생각했다. 상처가 지울 수 없는 흉터로 남는다면, 어쩌면 세월이 새겨 놓은 흔적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심지어 자의로 몸에 그림을 새기는 사람들도 있는 걸. 불연 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부터 타투를 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무슨 마음으로 자신의 몸에 그것을 새겼을지가 궁금했다. 겪어온 시간을 담으려 했던 걸까, 아니면 깨달은 것을 잊지 않으려 남겨둔 걸까. 몸에 무언가를 새긴 사람은 그것을 이해한 걸까, 아니면 이해하고 싶었던 걸까.

몇 주 전이었다. 성인이 된 자신을 누군가가 벗겨주고, 씻겨주고, 다시 입혀주는 일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수치스럽게 느껴지던 아침이었다. 목욕을 하지 않은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엄마가 잠시 장을 보러 나간 사이, 설이는 가까스로 위아래 옷을 벗어 두고 욕실에 들어가 수도꼭지를 열었다. 물이 쏟아지는 샤워기 아래에서 한참을 허우적댔다. 그렇게라도 스스로 씻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샴푸를 팔꿈치로 눌러서 짜냈다. 머리에 문지를 차례였다. 손을 올릴 수 없어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순간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렸다. 등 근육이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아슬아슬한 균형이 무너졌다. 무거운 머리는 순식간에 샤워기 거치대 모서리를 들이받고 물이 흥건한 바닥을 향해 낙하했다.

익숙한 병원 냄새, 하얀 천장, 슬픈 눈을 한 엄마.

“설아, 정신이 좀 들어?”

“여긴...”

“응급실이야.”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마에 걸리적거리는 무언가가 붙어 있었다.

“위험하게 왜 그랬어?”

엄마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 이마 찢어져서 여섯 바늘 꿰맸어. 엄마가 더 늦게 왔으면 어쩔 뻔했어. 설아, 엄마는 너 도와주려고 곁에 있는 건데, 제발 이러지 마.”

설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미용실에 들르자고 말했다. 머리가 짧으면 씻겨주기가 훨씬 수월할 테니까.

엄마는 주는 사람, 자신은 받는 사람. 이제는 주어진 자리에 충실해야 했다. 괜한 고집을 부려 봤자 주변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할 뿐이었다.

“다 말랐다.”

엄마는 헤어드라이기를 끄고 빗으로 설이의 짧은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설이의 시선은 여전히 거울 속 흉터를 향하고 있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되도록 빨리 포기하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살아있다면 더욱 온전히 살아있기 위해 발버둥 칠 자유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 흉터는 살아있음을 어디 한번 이해해 보라며 삶이 매몰차게 새기고 간 흔적인 걸까.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