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어머, 설아. 너 어릴 때 사진 좀 봐.”
설이가 보행기를 잡고 지나다닐 수 있도록 서랍장을 치우던 엄마가 오래된 사진첩을 들고 왔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 있는 설이 옆에 자리 잡고 앉아 사진첩을 다시 펼쳤다.
두 손으로 감쌀 수 있을 만큼 조그마한 아기가 물이 담긴 작은 욕조에 들어가 있었다. 엄마의 손은 아기를 소중히 받치고 있었다.
“아고, 작은 것 좀 봐. 얼마나 예쁜 아기였는지 몰라...”
“... 엄마”
“응?”
“... 엄마가… 됐을… 때,”
“응.”
“... 어땠…어?”
“너 태어났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행복했지. 그런데 네가 너무 작고 소중해서 겁나기도 했어. 이거 봐, 할아버지가 너 안고 계신 사진도 있네. 엄청 젊으셨다.”
사진첩을 넘기는 엄마의 얼굴이 오랜만에 환했다.
“너 태어나던 날 눈이 엄청 많이 왔거든. 창밖이 온통 하얬어. 그래서 눈처럼 예쁜 사람이 되라고 네 이름을 눈 설(雪) 자로 짓고 싶었는데, 너희 할아버지가 애 이름에 차가운 눈이 뭐냐면서 끝까지 안 된다고 그러시더라.”
베풀 설(設),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에 할아버지가 붙여 주신 한자였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는 설이에게 많이 베푸는 사람이 되라고, 그러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그 이름대로 살고 싶었다. 도움을 받을 때보다는 줄 때,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보다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일 때 마음이 한결 편안했기 때문이다.
“어머, 너 연주 발표회 나갔을 때 사진이다.”
흰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커다란 리본을 꽂은 꼬마가 발끝에 간신히 닿는 페달을 밟으며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설이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얼마나 야무지게 피아노를 치던지.”
엄마는 사진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너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힘들게 피아노 시키지 말 걸 그랬어. 엄마가 괜히 피아노 시켜서 이렇게 고생하나 봐.”
엄마라는 건 그런 걸까. 자식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려야 하는 사람. 피아노를 쳐서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엄마가 사진첩을 빠르게 마지막 장까지 넘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마저 정리해야지. 엄마 방에 있을게, 필요하면 불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움직임이 둔해진 혀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애초에 쉽지 않았다. 설이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는 엄마를 붙잡지 않았다.
소파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뻐근했다. 보행기를 붙잡고 어렵게 몸을 일으켰다. 한 걸음씩 천천히 방으로 걸어갔다.
“왜, 설아? 침대에 눕게?”
“... 응.”
“그래, 도와줄게.”
설이가 침대 옆으로 걸어가자 엄마는 보행기를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설이를 품에 껴안아 침대에 눕혀주었다. 혼자 침대 눕기도 어려웠고, 한 번 눕고 나면 거꾸로 뒤집어진 거북이처럼 혼자의 힘으로 다시 일어날 수도 없었다.
잠시 얼굴이 닿은 엄마의 품에서 익숙한 향을 느꼈다. 그 품에 더 오래 안겨 있고 싶었다. 어린아이처럼 안긴 채 잠들고 싶었다. 아니, 그 품에서 한 번만이라도 슬피 울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품에 안겨 있으면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게 될 것 같았다. 온 가족이 함께 기뻐했다던 그날을, 엄마가 두렵도록 행복했다던 그날을, 눈이 하얗게 내렸다는 그날을.
엄마의 가슴을 눈물로 흠뻑 적시고 나면 그 품은 엄마의 뱃속처럼 포근할까. 가슴속에 넘실거리는 눈물을 다 쏟아내고 나면 둥그런 자궁 속에 잠들어 있는 태아처럼 잠잠해질 수 있을까. 그 품은 고요한 무덤이 될까. 그곳에서 느끼는 것은 죽음과 같은 평온함일까. 무(無)로 돌아간 듯한 편안함일까.
“왜 그래, 설아. 자세 불편해?”
“... 아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자식을 하루 종일 따라다니느라 눈 밑 그늘이 깊어진 엄마였다. 엄마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설이는 알고 있었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자신은 살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