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21

소설 연재

by 바달


“자, 설아 밥 먹자.”

엄마가 소파에 앉아 있던 설이의 두 팔을 잡아당겨 설이를 일으켜 주었다. 설이는 자신의 양팔을 꼭 붙잡고 있는 엄마에게 의지해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갔다. 엄마는 설이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뒷걸음질로 부엌으로 향했다.

“으쌰.”

엄마의 미간은 몸에 힘을 줄 때마다 주름이 잡혔다. 설이는 겨우 의자에 걸터앉았다. 엄마가 설이의 두 다리를 식탁 안으로 밀어 넣어 식탁을 마주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식탁에는 믹서기로 갈아 건더기를 없앤 흰쌀죽과 노란 계란찜, 그리고 잘게 다진 생선살이 놓여 있었다. 설이는 힘겹게 숟가락을 붙잡았다. 숟가락을 들어 올려 그릇에 집어넣었지만 죽을 퍼서 들 수가 없었다.

“그 숟가락 너무 무거운가? 이걸로 써볼래?”

무거운 건 숟가락이 아니라 팔이었다. 하지만 말이 어눌해질수록 한두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게 습관이 되었다. 설이는 엄마가 바꿔준 나무 숟가락을 말없이 받아 들었다.

힘껏 숟가락을 붙잡았지만, 충분히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설이는 고개를 숙여 죽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치아를 맞부딪힐 때마다 축 처진 혀를 깨물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래, 네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머리 묶어줘야겠다.”

엄마는 머리끈을 가져와 앞으로 쏟아지는 설이의 짧은 머리카락을 묶어주었다.

“아이고, 다 묻었네.”

엄마는 식탁에 놓인 휴지 한 장을 뜯어 설이의 머리카락에 묻은 음식을 닦아주었다.

“이거 생선 가시 다 발라서 다진 거거든? 조심히 씹어서 먹어봐. 야채도 좀 먹으면 좋은데, 저번에 과일주스 간 거 먹다가 사레들린 거 보니까 겁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다.”

다져진 생선살은 숟가락으로 떠지지 않고 접시 끝으로 자꾸만 밀려났다. 엄마가 젓가락으로 숟가락 위에 생선살을 올려 주었다.

“저번에 만든 과일주스 너무 묽어서 목뒤로 확 넘어간 거지?”

입안의 음식이 잘못 넘어갈까 봐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조금 되직하게 만들어볼까 봐. 야채도 좀 넣고.”

잘게 다진 나물을 삼키다가 기도로 넘어가는 바람에 고생했던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오랜 기침 끝에 하루 종일 목구멍이 칼칼했었다.

설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표정도 전처럼 자유롭게 지을 수 없었지만, 미간을 힘껏 찌푸리는 것이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빨랐다.

“왜, 별로일 것 같아? 섬유질을 못 먹으니까 변비가 더 심해지잖아.”

그저께도 변기 위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배에 힘을 못 주는데 먹는 음식이 바뀐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숟가락이 기울어질 때마다 자꾸만 음식이 쏟아졌다.

“아이고, 안 되겠다. 이건 엄마가 먹여줘야겠다.”

엄마는 설이의 손에 들린 숟가락을 가져가 대신 입에 넣어주었다.

한쪽 팔이 식탁 모서리에 눌리고 있었다. 팔을 살짝 들어 올리려는 순간 생선살 한 점이 기도로 넘어가고 말았다. 옅은 기침을 반복했다. 엄마가 놀라서 설이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목에 걸린 것이 답답했지만 시원하게 기침을 뱉을 수도 없었다. 한참을 힘없이 콜록거렸지만, 목구멍의 까슬까슬한 느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어떡하냐, 죽에 조금씩 섞어서 줘 볼까? 그러면 뒤로 좀 덜 넘어가려나…”

엄마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려 할 때마다 나오는 엄마의 습관이었다.

“그만 먹을래?”

날이 갈수록 사레들리는 빈도가 늘고 있었다. 하지만 음식을 삼키기 힘들다고 해서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설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엄마가 먹여줄게. 씹는 데 집중해 봐.”

설이는 엄마가 주는 대로 음식을 받아먹었다.

밥 한 끼 먹는 데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식사를 마치고 엄마는 설이를 다시 일으켜 주었다.

“밥 먹었으니까 좀 앉아 있어야지. 거실로 갈래? 방으로 갈래?”

설이는 얼굴로 방을 가리켰다.

보행기를 잡고 스스로 몸을 일으킬 수 있던 때가 그리웠다. 붙잡을 것이 있어야만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 당시엔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그렇게라도 집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던 때가 이젠 꿈같았다.

엄마는 설이를 방 의자에 앉혀주었다.

“노트북 켜줘?”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은 마우스에 올려 주면 되지? 반대 손은 여기?”

설이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팔을 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데에도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이젠 익숙했다. 이런 것까지도 적응을 할 수 있다니. 새삼 놀라웠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목 근육이 지치면 고개를 들고 있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다시 엄마를 불러 소파나 침대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잠깐이지만 고개를 들고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지금을, 엄마가 붙잡아주면 두 발을 땅에 딛고 설 수 있는 지금을, 흐린 목소리로라도 엄마를 부를 수 있는 지금을 언젠간 또다시 그리워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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