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웅장한 암석을 딛고 선다. 바위의 표면에 바람의 결을 따라 새겨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옅은 구름이 두 발아래로 지나간다. 하늘 위에 떠 있는 기분이다.
물이 흐르는 소리도, 잎사귀가 서로 스치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구름 위로 고요함이 깔린다. 차가운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쉰다.
너는 벼랑 끝에 다리를 내밀고 앉는다. 네 옆에 서니 투박하게 둥그러진 바위 너머로 아득한 세상이 내려다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산등성이 위로 구름의 그림자가 지나다닌다. 순간 거세게 불어온 바람이 아찔하다. 나는 몸을 낮춘다. 벼랑 끝에 앉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한 뼘 뒤에 조심히 자리를 잡는다.
저길 봐, 노을이 지기 시작했어.
너는 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바람 같은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서서히 고개를 숙인다. 하늘이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한다.
너는 여기에 자주 와?
그럼. 매일 밤 여기 앉아서 마음에 담을 색깔을 찾아.
매일 다른 색깔이 보여?
응. 어떤 날은 차가운 빨강을, 또 어떤 날은 부드러운 노랑을 사랑하게 돼.
너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너도 한번 찾아봐. 어떤 색이 마음에 드는지.
화려한 빛깔로 가득한 한 폭의 그림을 펼쳐둔 것만 같다. 주황색 도화지에 흩뿌려놓은 보랏빛 수채 물감. 그 위를 누비는 구름은 노을을 머금어 황금빛 같기도, 분홍빛 같기도 하다.
모르겠어. 내가 사랑해 봤자 외로운 메아리일 뿐이잖아. 내 손에 쥘 수도 없는 색깔을 사랑하고 싶진 않아.
너는 옅은 웃음을 터트린다.
손에 쥘 순 없지. 그래도 사랑할 순 있잖아.
그건 괴로운 일일 것 같아.
나는 애써 무심한 척 말한다.
너는 살며시 고개를 돌려 나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왜 네 눈을 마주 볼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릴까.
나를 봐. 내가 괴로워 보여?
너는 분홍빛 미소를 짓는다.
하늘을 사랑하면 하늘만큼 넓은 사람이 될 수 있어.
하늘만큼 넓은 사람.
나는 너의 말을 되뇌어본다. 너는 사랑하는 게 많아서, 그래서 잔디밭에선 풀냄새처럼 푸릇하고, 산을 오를 땐 나무처럼 우직하고, 하늘을 바라보는 지금은 노을만큼 잔잔하구나.
너를 사랑하면 나도 너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