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보도블록 위를 지나는 휠체어가 심하게 덜덜거리고 있었다.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바퀴가 걸려 열 걸음에 한 번씩은 휠체어의 무게를 버거워하던 엄마와 달리, 아빠가 미는 휠체어의 속도는 상당했다. 두 발로 혼자 걷는 속도보다야 느렸지만, 그조차도 설이에게는 낯선 속도감이었다. 목에 보호대를 차고 나오지 않았다면 고개를 가누기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이는 이전에는 몰랐던 감각을 발견할 때마다, 스며 오는 슬픔을 거두어 내는 법을 배웠다. 남의 일을 바라보듯 무심한 호기심으로 하루를 견디는 법을 배운 것이다.
평지라고만 여겼던 아파트 단지의 보도가 얼마나 울퉁불퉁했는지를 알게 되었고, 마른 체구의 아빠가 통통한 엄마보다 훨씬 힘이 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빠는 벤치 옆에 휠체어를 세웠다.
“아, 참.”
벤치에 앉으려던 아빠가 다시 일어나 휠체어의 바퀴를 잠근 뒤 다시 벤치에 앉았다.
“여기서 좀 쉬자.”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이 반가웠다. 아빠가 급히 연차를 쓰고 귀국한 뒤에야 비로소 다시 마주한 하늘이었다.
식물 아닌 사람에게도 햇빛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햇살이 없으면 사람도 식물처럼 시들시들해진다는 사실을 경험했던 몇 주간이었다. 엄마의 허리디스크가 심해져 일상생활만도 버거웠던 그 시간 동안 이 하늘과 햇살이 얼마나 사치스럽게 느껴지던지.
공기는 바람도 없이 고요한데, 흐드러지게 핀 꽃과 진한 꽃향기가 대신 요란했다.
“설아, 내일은 엄마 데리고 병원 좀 다녀올게. 내일모레는 차 타고 나가서 공원도 가보자.”
공원은 사치스럽다 못해 꿈속의 공간을 뜻하는 말처럼 들렸다.
“어제 아빠가 가봤는데, 주차장에 차 대고 턱 몇 개 넘으면 인도로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더라.”
작은 턱을 넘는 데에도 큰 힘이 필요했다. 도로에, 건물 입구에, 곳곳에 턱이 있었다. 휠체어로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엄마가 지쳐갈수록 더 그랬다.
외래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갈 때마다 자동차에 휠체어를 싣느라 힘들어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가 휠체어에서 설이를 일으켜 자동차 뒷좌석에 앉힌 뒤, 목을 기댈 수 있도록 카시트를 세우고, 휠체어에서 바퀴를 떼어내 하나씩 자동차에 싣는 동안, 설이는 가만히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 가는 일을 일종의 나들이라고 부르며 너무 힘들어하지 않는 것, 병원 외에는 갈 곳이 없는 나날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설이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아빠가 한국에 있을 방법을 찾고 있으니까. 아빠도 옆에 있으면 엄마가 훨씬 덜 힘들 거야.”
해외 파견 복귀 절차가 마음처럼 되지 않아 아빠가 이직을 준비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서 전해 들었다.
설이는 아빠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마음이 무거울 때, 하지만 그것을 내비치고 싶지는 않을 때 아빠의 눈꼬리는 미세하게 쳐져 있었다.
인간의 몸에는 두 종류의 신경이 존재한다. 하나는 감각신경, 또 하나는 운동신경. 이제는 얼굴 표정조차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나날이 죽어가는 운동신경과 달리 감각신경만큼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출력의 기능은 사라졌으나 입력의 기능은 온전히 남아 있는 몸인 셈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눈앞에 펼쳐진 봄날의 광경에 집중하고 싶었다. 나무가 매년 봄마다 돋아내던 녹색 날개들이, 수도 없이 무심히 지나쳤던 이 장면이 왜 이제 와서야 기적처럼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내심 분하기도 했다. 억울한 만큼 더 열심히 눈에 담아 가야지. 사지를 축 늘어뜨린 채 심드렁한 표정을 한 겉모습을 보고는 아무도 설이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자연의 파편들을 두 눈에 담고 있었는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감각은 매일같이 자신을 얼마나 끔찍하게 괴롭혔던가. 가려운 정수리를 긁을 수 없고, 눈썹이 들어가 따가운 눈을 비빌 수 없던 때에, 가만히 누워 있다 보니 등은 배기고,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모기 소리에 소름이 끼쳐도 팔을 휘저을 수 없던 때에, 감각만 남기고 죽어가는 이 몸을 얼마나 저주했던가. 여전히 대상을 찾아 헤매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사리 가라앉기엔 이미 과도하게 커져버린 원망이었다.
입력은 있으나 출력은 없는 몸. 그렇다고 배출되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 자꾸만 자라나는 손발톱과 머리카락, 아무리 씻어도 또다시 배어 나오는 피지와 땀. 몸은 스스로 처리할 수도 없는 배설물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목에 가래가 끼어 숨쉬기가 어려웠던 어느 날 밤, 설이는 자신의 몸이 모든 배설과 분비를 멈추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그러나 곧이어 그것이 살아있기를 멈추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그날부로 설이는 오직 배설만으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이 육체가 질병의 산물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인지를 더 이상 분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어떤 거센 욕구가 심연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울렁이는 가슴은 무엇을 이토록 간절히 바라고 있는 걸까. 너른 하늘 위를 자유롭게 누비고 싶다는 생각이었을까. 그렇다면 작은 새가 되어보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하늘을 나는 새도 병들면 땅에 내리 꽂혀 짓이겨질 운명이 아닌가.
해방되고 싶었다. 야위어 갈수록 무거워지고, 무거워질수록 공허해지는 이 모순덩어리로부터. 어쩌면 하늘을 날고 싶은 게 아니라 공기처럼 흩어져버리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그땐 정말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슴은 계속해서 울렁거렸다. 이게 아닌데. 가슴이 바라는 것은 분명 이게 아닌데.
만약 온전히 사라질 수 있다면, 그렇게 남은 가족들도 평온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슴이 바라는 것일까.
설이는 그 순간,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 없을 만큼 가늘지만 분명하게 피어오른 한 줄기의 미련에 소스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