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1

소설 연재

by 바달


배에 구멍을 뚫어 관을 삽입하는 내시경 시술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면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느껴진 것은 뱃가죽을 파고드는 쓰라린 통증이었다.


의사의 말대로 위루술을 한다고 해서 바로 경구 섭취가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었다. 삼킬 수 있는 것은 조심히 입으로 먹고, 부족한 영양분은 위루관을 통해 보충하는 식이었다. 한동안은 볼살도 차오르고 몸에 힘도 조금 붙는 듯했다. 그러나 늘어난 약간의 체중은 몸에게 잠시의 시간을 벌어주었을 뿐이었다.

두세 달이 흐르자, 목 근육에는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입으로 음식을 삼키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하루 세 번의 식사를 대신해 자리 잡은 일상은 주사기로 위장에 유동식을 밀어 넣는 일과 관장약으로 딱딱하게 굳은 대변을 끄집어내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켜둔 텔레비전 속 소리와 형상들이 밤마다 찢기고 뒤섞여 꿈속에 스며들었다. 권태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환멸.

그것은 스스로를 향한 것이기도 했고, 이 끝없이 무정한 싸움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설이는 다시는 그 어떤 것에도 정을 붙이지 않겠노라고 마음먹었다. 궁지에 몰린 선수가 마지막으로 남은 비열한 한 수를 두듯이, 사소한 상실의 여지마저 철저히 박멸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패까지 던진 후 찾아온 것은 끔찍한 불면이었다. 그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겠노라 다짐한 냉담한 정신은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꽉 막힌 회색빛 천장을 바라보며 뜬눈으로 지새우던 밤이었다. 정신은 수면유도제의 작용을 뚫고, 혼미함과 뚜렷함을 끊임없이 넘나들고 있었다.

고운 입자로 가볍게 굴러다니던 불안의 분말. 그것이 끈적한 무언가와 뒤섞여 딱딱하고 굵은 입자로 뭉쳐 뇌의 고랑마다 박혀 버렸다.

설이는 두 눈을 있는 힘껏 감아보았다. 의지와 달리 눈꺼풀은 힘없이 떨렸다. 그저 잠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위루관을 삽입하기 위해 구멍을 낸 부위가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자꾸만 돋아나려는 새살 때문인 것 같기도 했고, 위루관을 고정하기 위해 붙여둔 테이프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한 번만이라도 손톱을 세워 간지러운 곳을 시원하게 긁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술을 마치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느꼈던 쓰린 통증은, 이후에 찾아온 간지러움에 비하면 차라리 견딜 만했었다.

설이는 병원에서 루게릭병 진단을 위해 근전도 검사를 받았던 날을 떠올렸다. 어두운 검사실에서 팔다리뿐만 아니라 어눌해진 혓바닥까지 전기를 흘려보냈다. 전기가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아찔한 순간에는 온몸에 식은땀만 흘렀다.


통증은 과도한 감각이다. 차에 치여 쓰러진 고속도로 위 한 마리 사슴처럼, 피 흘리며 몰아쉬는 호흡 속에서 통증은 정신을 마비시킨다. 과도한 감각으로 인해 표면으로 얕게 증발한 정신은 그 안에 품고 있던 무한의 깊이를 잊고 만다. 인간이기를 멈추는 일. 그러나 그 추락은 이상하리만큼 차라리 견딜 만한 일이었다.


반면, 간지러움은 결핍의 감각이다. 조금만 더 강한 자극으로 덮어주면 해결될 것 같고, 조금만 더 몸부림치면 채워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부족함. 찬물을 끼얹듯 시원히 긁어내지 못한 간지러움은 곧 산불처럼 번진다. 채워지지 못한 욕망은 불길처럼 소란하다. 허기처럼, 갈증처럼, 피부 아래에서 꿈틀대는 가려움은 마음의 가장 연약한 틈을 비집고 들어와 정신을 갉아먹는다. 그것은 때로 고통보다도 더 비참하다.


설이는 거실에 소파 대신 놓인 환자용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옅은 부엌 전등 빛이 거실 시계 위로 흐릿하게 번져 있었다. 간지러움에 온 신경이 곤두선 탓에 잠이 오지 않았다.

오전 5시. 잠시나마 얕은 잠에 들었을 엄마를 또 깨워야 하는 걸까.

설이는 힘겹게 팔을 움직여 침대의 낙상 방지용 난간에 묶인 작은 종을 건드렸다.


제발 일어나요.


“응…”

땡그랑거리는 종소리가 멈춘 뒤, 한참 만에 방에서 신음에 가까운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엄마가 두통이 있는 듯 이마를 한 손으로 짚으며 안방에서 걸어 나왔다.

“왜…”

“... 아… 여.”

“가려워? 어디? 머리? 등? 배?”

“... 애.”

설이는 눈으로 배에 꽂힌 위루관을 가리켰다.

“배가 가려워? 여기 말이지? 소독하고 말려줄게.”

엄마는 졸린 눈을 비비며 부엌으로 걸어가 손을 씻었다. 소독 용품을 챙겨 와 위루관 주위로 붙은 반창고를 떼어낸 뒤, 생리식염수에 적신 솜으로 조심스럽게 피부를 닦아주었다.

“좀 빨개졌네. 이 테이프가 안 맞나 보다.”

손으로 긁는 것보다야 못했지만, 시원하게 젖은 솜으로 문지르고 나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조금 말렸다가 다시 거즈 대고 테이프 붙여줄게.”

엄마는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좀 있으면 밥 먹어야 되니까 잠깐만 더 자고 일어나야겠다.”

엄마는 다시 안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설이는 피로감 묻어나는 엄마의 발걸음을 지켜보았다.

엄마는 머지않아 다시 일어나야 할 것이었다. 위루관으로 경관식을 급하게 밀어 넣으면 속이 울렁거리거나 설사를 하기 일쑤였다. 경관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넣어주어야 했고, 엄마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그 일을 시작해야 했다.


설이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한 겨울의 오후를 기억했다. 찬 바람 속에 고소한 밀가루 냄새가 섞여 있었고, 붕어빵 노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외투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채 뒤꿈치를 들어 올리자 어깨너머로 보이던, 바삭하게 익은 밀가루의 겉면. 지갑을 열어 지폐를 건네고 갈색 종이 봉지를 받아 들었을 때 손끝으로 전해지던 온기. 길을 걸으며 갓 구워진 붕어빵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던 부드러운 반죽과 달콤한 팥앙금.


왜 그 잠깐의 여유마저 빼앗겨야 했을까.


스스로의 존재가 끊임없이 희미했던 그때, 흔들리던 현재의 축에서 과거와 미래를 분주히 오가던 정신은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온기를 입에 물고 휴식했다.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건지, 그 모든 질문을 미뤄두고, 그저 살아있음을 선명히 느끼던 순간이었다.


그 휴식이 죄였나.


신은 답을 주지 않는데, 인간은 질문을 할 수 있을 뿐인데. 선명한 답을 쥔 듯한 착각에 머무르고 싶었던 마음은 죄였나. 왜 남은 것은 몸에 뚫린 구멍과 기대할 것 없는 내일뿐일까.


내일. 신경 사이사이로 끈적하게 녹아들어 불안의 입자와 뭉쳐버린 것은 분명 내일이었다. 정 붙일 곳을 잃은 채 또다시 견뎌야 하는 내일. 멈출 듯 멈추지 않는 시간, 계속해서 찾아오는 내일.

설이는 어두운 관을 상상했다. 딱딱하고 차가운, 어깨너비의 좁은 관. 나무로 된 뚜껑이 무겁게 닫혀 있는 관. 흰 끈을 단단히 둘러, 다시는 열 일 없으리라는 확신만큼 강하게 매듭지어 묶은 네모난 관.


감긴 두 눈이 기다리는 것은 잠이 아니라 죽음이야.


내일은 없다.


내일은 없다.


요란했던 정신이 서서히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내일은 없다.


내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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