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일주일 만에 인공호흡기 마스크에 눌린 양쪽 볼살에 물집이 잡혔다.
“밤새 차고 있는 건 무리인가? 자기 전에 몇 시간씩만 하고 있어 볼까?”
엄마는 짓무른 설이의 피부에 반창고를 붙여주며 물었다.
설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인공호흡기로 필요한 호흡을 채우면 기관 절개술은 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믿고 싶었다. 인공호흡기를 열심히 사용하면 다가오는 미래를 막을 수 있을 거라는 듯이, 그것이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최선이라는 듯이.
희망에 속아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왜 희망은 여전히 그토록 달콤했을까. 희망은 어째서 얼룩진 피부와 따끔거리는 물집마저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매혹적인 것이었을까.
하지만 각종 약물과 의료기기를 하루 종일 동원해도 목에 끼는 가래는 갈수록 끈적해졌고, 호흡곤란과 사레는 점점 더 빈번해졌다.
설이는 거실에 하나둘 늘어가는 의료기기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엄마가 공부하고, 관리하고, 소독하고, 세척해야 하는 기기들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곳은 환자를 위한 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설이는 단지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저당 잡혀 있는 가족들의 일상을 떠올렸다. 자신의 삶을 담보로 딸을 살려두겠다는 엄마. 그녀를 향해 쏟아지려 하는 뜨거운 감정이 분노인지, 슬픔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설이는 자신이 붙잡고 있던 것이 희망이 아니라 일종의 결단이었음을 서서히 깨달았다. 24시간 간병이 필요한 기관 절개술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더 깊숙이 뿌리내리는 자신의 생존 본능을, 숙주의 목구멍에 관까지 꼽아가며 살아있으려는 그 기생충을 정복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였다. 설이는 최대한 오랫동안 온 힘을 다해 자신의 호흡을 지켜내다가, 가장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그 지독한 본능이 방심하는 찰나에 질식의 고통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져버릴 작정이었다. 이 집구석에서 고약한 기생충에게 잡아먹혀 온 가족의 삶을 끌어내리는 벌레로 전락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설이는 두 눈에 독기를 품은 채 수개월을 보냈다.
유리처럼 아슬아슬하던 일상이 깨어진 것은 또 한 번의 밤이었다. 허파에 산소가 턱없이 부족했다. 정전된 건물을 작은 손전등 하나로 다 비출 수는 없듯이, 집에 있는 인공호흡기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심한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앰부백을 꺼내러 뛰어가는 급한 발소리, 앰뷸런스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 떨리던 엄마의 손, 어지러울 정도로 빨라지던 맥박, 나른해지던 정신.
몽롱해지던 중에 심연으로부터 떠오른 것은 우습게도 매일 저녁 냉장고에서 꺼내 먹던 반찬에 대한 기억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냉장고 한편에는 항상 엄마가 만든 반찬들이 투명한 반찬통에 담겨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달달하게 설탕을 입힌 멸치볶음, 붉은 고춧가루가 고르게 스며든 무생채, 전자레인지에서 꺼내자마자 따뜻한 냄새로 퍼져 가는 된장찌개, 밥솥 가득 지어 둔 콩밥. 엄마가 피아노 학원으로 출근하기 전에, 일찍부터 몸을 일으켜 만들어두었을 음식.
설이는 목구멍에 심한 이물감을 느끼며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환자분, 여긴 중환자실이에요. 여기 계신 지 이틀 되셨고요, 지금 기관 내 삽관이 되어 있어서 많이 불편하실 거예요.”
간호사인 것 같았다.
“인공호흡기를 입안으로 삽입한 거니까 불편해도 참으셔야 해요. 이해하셨으면 눈 깜빡여 보세요.”
설이는 두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소변줄, 링거줄, 인공호흡기 튜브까지, 몸에는 수많은 줄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설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든 채로 보냈다.
하루에 한 번씩 주어지는 면회 시간은 20분 남짓이었다. 한 번에 보호자 한 명씩 들어올 수 있었기에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가며 찾아왔다.
면회 시간이 되자 커다란 비닐 가운을 입은 보호자들이 중환자실로 들어와 각자의 가족을 찾아 분주히 움직였다.
“설아…”
인큐베이터 속 아기가 투명한 아크릴 너머로 마주한 여인의 눈빛이 이와 같을까.
자신과 탯줄로 연결되어 있던 빨갛고 연약한 생명체를 갓 떼어낸 어미의 눈빛이 이럴까.
붉게 충혈되었지만, 더없이 따뜻한 엄마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설아, 산소포화도가 많이 떨어져서 위험할 뻔했대. 이거 인공호흡기, 너무 오래 하고 있으면 기도 다 망가진다고, 천천히 떼어 보려 한대.“
설이는 침착하려 애쓰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흔들리는 눈의 초점을 붙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조금만 더 힘내자, 설아. 조금만 더…”
엄마는 간절한 눈빛으로,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하루는 두렵도록 길었지만, 반면 한 주는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설이의 자가호흡이 마음처럼 돌아오지 않자, 병원에서는 기관절개술 여부를 빨리 결정하라며 독촉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숨도 쉴 수 없게 된 몸뚱이를 목구멍에 관까지 꽂아가며 살려두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결국 설이가 기관절개술 시행에 동의하고 말았던 것은 다름 아닌 너무나도 강렬했던 음식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엄마가 해두었던 반찬이, 다 먹지도 못한 채 냉장고에 남아 있던 먼 과거의 반찬들이 참을 수 없이 아깝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음식을 삼켜본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는데. 생명을 한 차례 더 연장한다고 해서 다시 그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런데도 지나간 날 다 먹지 못해 냉장고에 남아 있던 반찬이 너무 아까워서, 정말 참을 수 없이 아까워서 지금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왜였을까.
1) Ambu bag. 호흡곤란을 겪는 환자에게 수동으로 공기를 주입하는 수동식 인공호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