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구나, 이 손을
반복되는 수술과 재활, 줄어드는 몸의 가능성.
여러 감정이 뒤엉킨 채, 마음속엔 답답함이 쌓여갔다. 하지만 그 답답함이 곧장 십만 자짜리 글을 완성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장편소설로 하나의 이야기를 써내야겠다는 마음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생각의 돌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중 하나는, 글쓰기 그 자체에 대한 고찰이었다.
사랑했구나, 이 손을.
움직이는 관절을 수술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손목은, 작고 복잡한 여덟 개의 뼈들이 인대와 연골로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어 더 그렇다. 이 구조 덕분에 손목은 섬세하고 유연한 움직임이 가능하지만, 찢어진 인대를 봉합하고 나면 그 모든 각도를 하나하나 다시 회복해야 한다. 수술은 시작일 뿐, 진짜 싸움은 그다음이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수술 후 관절이 굳는 걸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조직을 움직이고, 때로는 찢어내듯 억지로 손목을 꺾으며 각도를 되살려야 한다.
하지만 재활의 통증보다도 먼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건, 내 손이 더 이상 내 손 같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살면서 처음 겪는 낯선 감정이었다.
매일 쓰던 손, 내 몸의 일부였던 그것이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팔 끝에 남의 손이 달려 있는 것 같았다.
손에 익지 않은 무언가를 억지로 써야 하는 기분. 그건 마치 평생 익숙했던 물건을 도둑맞은 것 같은 낯섦이었다.
그때 알게 됐다.
내 손은 단순히 몸의 일부가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아끼고 익숙하게 사용해 온,
하나의 ‘애착 물건’이었다는 걸.
글을 쓸 수 없었기에, 글쓰기에 대해 생각했어.
얼마나 회복할 수 있을까? 앞으로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정상적으로 일하고, 살아갈 수는 있을까?
여러 가지 막막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지만 막막함과 슬픔은 조금 다르다.
우습게도, 그 순간 가장 슬펐던 건
일기를 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가족들과 나를 캐릭터로 만들어 만화를 그리기도 했고,
고등학생이 된 뒤엔 다이어리에 깨알 같은 글씨로 감정을 쏟아내며 공부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렇게 하루를 종이에 털어놓아야
비로소 다음 하루로 넘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매일 일기를 쓰는 사람들은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이틴 영화처럼 “Dear Diary”로 시작하는 정성스러운 기록도 아니고, 형식이나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를 삼켜내기 위해, 익숙한 노트와 펜을 들고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 적는 시간이었다.
그 습관처럼 반복되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상했는지, 두 손에 붕대와 보호대를 번갈아 끼고 지내던 시간 속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글이 사치가 된 어느 날
청개구리 심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쓸 수 없다고 하니, 더 쓰고 싶었다.
마치 설탕을 먹지 못하는 당뇨병 환자처럼, 소금을 삼가야 하는 신부전 환자처럼, 나에겐 글씨 쓰기가 금기이자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유튜브에서 글씨 쓰는 ASMR 영상을 틀어놓고 한 시간씩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더 오래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펜을 집어 들었다. 필압이 강하게 들어가는 볼펜은 사용할 수 없어서, 두꺼운 플러스펜이나 네임펜을 골랐다. 뚜껑을 여는 데 힘이 필요한 것도 피했다. 열기 쉽고, 가볍게 쓸 수 있는 펜을 찾았다. 그렇게 몰래 숨어서 게임이라도 하듯, 다시 글씨를 썼다.
마치 아기가 되어 다시 ‘가나다’를 연습하는 기분이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글씨는 엉망이었다. 한 음절을 쓰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무엇보다 단어 몇 개만 써도 통증이 꽤 심했다.
타이핑을 한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팔 힘이 아니라 손목 관절을 쓰는 일이기에, 손목에 직접적인 통증이 가해졌던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무리해서 사치를 부리는 마음으로 매일 한 줄짜리 일기를 썼다.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하루에 단 한 줄을 남긴다면 무슨 말을 남겨야 할까?
매일 방대한 양의 일기를 쏟아내던 나에게 찾아온 전환점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간결하게 쓸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오늘의 핵심은 어떤 사건이었을까? 어떤 감정을 남기고 싶은가?
실제로 글을 쓰기 전에 나는 천천히, 오래 생각해야 했다.
글을 쓸 수 없었기에, 오히려 글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