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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free Aug 29. 2023

전달하지 못한 진심

당신을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어르신들은 한번 넘어져서 고관절 부러지면 그대로 가는 거예요



수업 중 회원님이 본인의 일화를 얘기했다

다년간 일주일에 한두 번 꾸준히 방문수업을 진행하던 회원님,

운동 숙제는 내줘도 안 하시면서 수업만큼은 꾸준히 한 덕에 화를 면했다면서 말이다


최근 욕실에서 이상한 자세로 미끄러졌는데 그 자세가 유연성 덕에 가동범위가 나와 고관절이 부러지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회원님께 골절과 죽음의 연관성을 물었다

70-80 나이가 드시면 골절 시 움직임 감소로 근육량이 떨어져 기력을 다해 돌아가신다고 한다

때로는 한 자세만 유지해서 생기는 욕창으로 돌아가시기도 한다면서 말이다


이 내용을 진작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무 안일했던 나 자신이 후회된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매일 일 때문에 바빠서 소중한 가족을 찾아뵙지 못한 걸까

그저 산사람으로서 후회막심이다

말할 자격도 없지만 잊지 않기 위해 글로나마 그리워해본다




베이비붐 시절 태어난 아이 중 한 명은 58년생 우리 아버지다

아버지께서는 형제가 많다

아들 많은 6남매 중 둘째로, 막내 여동생은 아기 때 잃어버려 찾지 못했다고 한다

5남매 중 아버지와 고모를 제외한 나머지 삼촌들은 모두 싱글이다


막내삼촌은 돌싱이며 어렸을 때 이혼과정이 꽤 복잡했던 걸로 기억한다

큰아빠는 지적 장애인이었기에 셋째 삼촌과 큰아빠는 쌍둥이처럼 한 몸과 같이 움직였다

셋째 삼촌은 큰아빠에게 퉁명스럽게 대하면서도 항상 케어하며 큰아빠의 모든 일을 책임졌다


큰아빠는 지적 장애인이지만 감정표현도 잘 되고 의사표현이 확실해 충분히 대화가 가능했다

식탐과 욕심이 많아 음식 절제가 안되다 보니 항상 배는 수박만 했다

유독 배만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내가 큰아빠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날은 명절날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구심점이 없는 건지

가족행사라고 할 건 명절뿐이었기에 설날과 추석 일 년에 두 번 큰아빠를 볼 수 있었다


큰아빠는 나에게 뭔가를 해준 적은 없다

물론 기대한 적이 없기에 서운한 것도 없다

큰아빠는 소유욕이 많아 어렸을 때 설날에 세배를 하면 나와 동생에게 세뱃돈 주기 아까워 도망가는 탓에 삼촌이 애들 용돈 좀 주라고 면박 준 적도 있다

참 웃긴 해프닝이다

지금은 이것마저 추억이 되었다


명절날 오면 어눌한 말투로 '안녕'이라고 했다

간단한 대화들은 가능하여 짧게 대화했고 큰아빠의 주된 관심사는 먹거리였다

우리 집에서 차례를 지냈는데 항상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약과나 한과, 과일 등을 해치웠다

먹는 걸 참 좋아하셨다


초등학생 땐 몸이 작았기 때문에 큰아빠가 천장으로 붕-하고 두 팔로 내 몸을 던져 날려주기도 했는 데

그게 얼마나 재밌었는지 아직도 정확히 머릿속에 남을 정도다

가끔 삼촌과 큰아빠의 시골 비닐하우스를 갈 때면 길바닥에 아기개구리를 보고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더니 큰아빠가 밟아 죽였던 기억이 난다;

죽일 필요까진 없었지만 그만큼 순간순간 날 아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행동이 있다


엄마가 말하길 큰아빠가 과거에 당뇨로 아팠다가 눈을 떴을 때 울면서 내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다른 조카들보다 유독 나한테 더 잘 대해줬던 게 기억이 난다

나는 자라면서 가족보다는 나 자신이 중요해졌고 성인이 되고 나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큰아빠가 돌아가신 날

23년 8월 2일 오후 4시

난 그때 회원님 개인레슨 체험을 안내하고 있었다

돌아가신 다음날에도 내 일상을 그대로 열심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이 너무 역겨웠고

찾아뵐 수 있는 순간이 많았음에도 단 한 번도 찾아뵙지 않은 내가 너무 병신 같았다

내가 자부심을 가지고 했던 일들이 다 별 볼 일 없는 쓰레기 같았다

사실 화장터에 가기 전까지 믿기지가 않아 그저 얼떨떨했다

퇴근길에 엄마는 전화로 토요일에 화장터로 오라고 말했다




화장터에서 화장을 진행하는 걸 태어나서 처음 봤다

화장 절차는 몇 시간가량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가족 친지분들과 대화를 했다

삼촌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저번주에 마지막으로 갔을 때 상태가 안 좋았다고 말이다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로 "다음 주에 또 보러 와"라고 했다고 한다


가슴이 미어진다

왜 아무도 날 찾지 않은 걸까

평생을 나한테 잔소리와 조언을 했던 어른들, 왜 이렇게 위독했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걸까

가족들을 탓하고 싶지만 사실 지나가는 말로 여러 번 들었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내 잘못이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엄마는 큰아빠가 많이 살이 빠지셨다고 했고 고관절 회복이 어려워서 요양원에 갔다고 이따금씩 얘기했었다

찾지 않은 건 순전히 나였다

모든 순위에서 밀리고 밀린 결과고 이 죄책감은 내 선택에 대한 결과물이다

슬픔과 고통과 미련은 응당 내 것이다

최선을 다한 사람은 의외로 덤덤하다

잘해주지 못하고 들여다보지 못해 놓고 염병 떠는 것이다


큰아빠가 돌아가시면서 나에게 많은 교훈을 주셨다

있을 때 잘하라는 것.

평상시 전화 한 통이라도 마음표현하고 부지런히 가족들과 좋은 추억 남기라고 말이다


큰아빠 너무 미안하고 그동안 감사했어요

편히 쉬시길 바라요

그리고 잊지 않을게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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