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오후강사
필라테스 강사 초보시절 나는 만년 오후강사였다
시간이나 위치 가릴 것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지원하다 보니 무리하게 일했던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점차 스케줄을 정리하여 안정적으로 일하게 되었다
근무시간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프리랜서 강사이기에 경력이 쌓이며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사람마음 똑같듯 아침에 수업해서 이른 오후에 끝나고 남은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오전타임을 대부분 선호한다
남는 시간에는 투잡을 할 수도 있고 자기 계발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경우, 아이 케어 때문에 오후 수업이 어려워 오전 수업만 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나 같은 생계형 강사라면 오전에 2-3타임으로는 기별도 안 가겠지만 욕심 없이 용돈 벌이 정도의 수입을 생각하며 매일 아이와 있던 집 밖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사회에서 내 자리가 있다는 것으로 힐링이 되는 어머니 강사님들에게 오전 수업은 마치 단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이처럼 대다수 오전-미들시간을 선호하기에 한 번 자리를 꿰차면 오래 일하기도 하고 구인구직을 올린다고 해도 빠르게 마감되기에 오전 구인공고는 상대적으로 찾기 힘들다
그나마 오전 전임(수업이 없어도 붙박이로 있는 형태)또는 반전임(근무시간이 적은 붙박이) 공고도 이따금씩 보이긴 하나 격주 또는 매주 주말 출근을 해야 한다는 나름의 아쉬움이 있다
페이도 아쉬운 부분이 존재한다
대부분 낮은 기본급에 수업료는 파트강사일 때보다 많이 다운시켜서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오랫동안 묶어놓는 형태라 이것저것 따지자니 좋은 조건의 센터를 찾기는 쉽지 않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왜 이리 까다롭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단돈 백 원, 이백 원이라도 사람 마음 움직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매번 일했던 곳에서 오전 근무를 희망한다고 어필했건만 다른 강사님들도 오전을 희망한다면서 오후타임으로 들어와서 오전타임으로 바꾸는 선례를 만들지 않겠다며 단호히 '근무시간을 바꿀 수 없다'라고 못 박은 센터도 있었고 오후 수업을 계속 유지하는 조건으로 오전과 미들수업을 내어주는 센터도 있었지만 오후에서 완전히 오전으로 갈아타는 건 쉽지 않았다
도무지 오전 강사님들이 그만둘 생각 없이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평상시 일을 잘한다는 전제하에 오후에서 오전으로 근무시간을 바꾼다는 건 순전히 타이밍이자 운이기 때문에 난 그동안 타이밍을 못 맞춰서인지 바꾸기 어려웠다
덕분에 현재 오전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삶이 되어버렸다
오후 타임은 그만두면 모든 수업을 다 그만둬야 하기에,
오전 수업은 포기할 수 없기에,
언제쯤 이른 오후에 수업이 끝날까.
나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오기는 할까?
불 꺼진 간판이 즐비하는 고요한 상가를 벗어나
오늘도 저녁 10시 30에 퇴근버스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