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에 대한 고충
평일 중에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여유로운 타임이라고 하면
나에게는 금요일 오전이다
나머지 평일은 오전 오후 저녁 할 것 없이 불규칙적이고 정신없는 하루인데
어쩐지 금요일은 오전 수업이 없어 오후에 여유롭게 출근이 가능하다
그래서 목요일 저녁에 퇴근을 하면 벌써부터 주말이 된 것만 같은 설렘 가득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며칠 전 원장님께서 금요일 오전에 수업이 가능한 지 물어보셨다
나는 여유로운 금요일을 절대 지키고 싶었지만
내 주머니 사정은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동안 즐거웠던 금요일 오전은 마음속 한 구석에 두고 다시 달려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로 가뜩이나 달갑지 않은 금요일 오전 수업
그것도 연강이 아니라 한 타임을 하러 하루에 몇 번이고 출근과 퇴근을 반복해야 하다니
심지어 강사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학생수업이었다
키즈수업의 대상인 유아(초등학교 1~4학년) 친구들이나 학생수업의 대상인 고학년(초등학교 고학년~고등학교)의 수업은 운동목적에 맞는 트레이닝과 성장기 신체조건에 맞춘 수업을 하기에도 여념이 없다
대다수 본인의 의지가 아닌 부모님의 의지로 끌려 왔기에 학생들은 집중력이 떨어지기 쉬워 수업 중간중간 광대가 되어 재미요소를 곁들여야 한다
게다가 수업의 본질을 잃지 않고 틈틈이 동기부여를 주어야 하며 예민한 감수성을 순간순간 잘 간파하여 친밀감 형성을 하기란 정말이지 수업 한 타임만 해도 성인 수업을 3~4시간 한 것과 같은 에너지 소모가 든다
거기에 부모님까지 항상 옆에서 예의주시를 하기에(수업 룸 안에 들어오셔서 동의 없이 나와 학생의 사진과 영상을 찍기도 한다) 1+1의 느낌이라 사방에서 기가 빨린다
나는 누구를 가르치던지 똑같은 페이를 받는 평범한 일개 강사로서 학생 수업을 선호하지 않는다
참고로 강사 대다수의 의견은 아니며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렇다고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딱히 없었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고 물이 나가면 들어올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프리랜서 강사 입장에서는 말이다
센터에도 성수기와 비성수기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학생은 만 15세 남자아이였다
첫인상은 그간 가르쳤던 학생 중 역대급으로 강했다
내가 밝게 인사를 했는데 거의 싸우기 직전의 앙칼진 눈빛으로 한번 보더니 말없이 안내해 준 탈의실로 쓱 들어가 버렸다
기분이 언짢은 것은 둘째치고 앞으로의 수업 역시 쉽지 않음을 느꼈다
수업 내내 아들 옆에 딱 붙어계시는 어머니에게만 대화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느낌에 중2병이 와도 단단히 왔는데 키가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커서 위압감이 들었다
신체조건과 언행 사이의 갭이 커서 몸만 큰 아이라는 게 느껴졌다
이맘때쯤 호르몬의 변화로 인하여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은 청소년 친구들은 부모님과 불특정 다수 어른들에 대한 경계심과 반발심이 극에 달한다
자기주장도 확고해지며 내가 다 컸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부모님에게 반발하는 경우는 대개 부모님께서 잔소리가 많은 것 때문이다
(근데 본인이 하는 행동이 잔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건 모른다ㅎㅎ)
그런 모습들이 눈에 너무 잘 보여서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로 나의 질풍노도 흑역사가 생각나기도 한다
보통 강사가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안 되고 케어하기 힘든 회원의 경우 재등록을 막기 위한 수법으로 100% 혼신을 다하지 않는 수업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는 수업이 힘든 부분에 대해 센터 매니저 또는 원장과의 소통이 꼭 필요하다
정말 흔치 않은 경우이지만 가끔 있다
그렇다고 대충 하는 건 아니고 사소한 것마저 정성을 백 프로 쏟지 않는 미묘한 방법이다
다른 서비스직도 마찬가지로 강사도 사람이다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에 따라 나의 에너지도 그에 맞게 나올 뿐이다
알려주는 동작을 열심히 수행하려고 하고 긍정적으로 소통의 의지가 있는 분들에게는 내 체력 이상으로 수업에 헌신하기도 하는 반면에
어떤 걸 알려줘도 목석같이 가만히 있고 불평불만만 하는 분들에게는 도무지 애정이 가지 않는다
예전에는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해 자책하던 나였는 데, 다년간 셀 수 없이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다 보니 현재는 스스로를 채찍질할 필요 없고 나는 매 순간 내 도리를 하면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내가 별로라고 느낀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른 사람 입에서 똑같은 생각을 들은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학생은 과연 어떨지 긴장과 기대가 공존했다
보통 이러한 중2병 느낌이 다분한 친구의 경우 초반에 수업의 콘셉트를 확실히 하여 주도권을 잡지 않으면 남은 수업이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이럴 때는 힘든 상황에서만 나오는 나만의 광기로 수업을 한다
나를 버리고 이 상황을 즐기려고 노력하면 대개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
정말이지 이 팽팽한 긴장감은 백스테이지에서 무대에 서기 직전인 연기자의 느낌이랄까.
원장님께서 본인 지인이라 잘 부탁한다고 전달했기에 무거운 돌덩이가 내 마음속에 하나 더 추가되었다
하지만 피하지 못하면 뭐다? 즐기자!
열강을 끝낸 후 마지막에 수줍게 웃으며 재밌었다고 하는 아이를 보니 보람도 느껴지고 나의 50분짜리 공연이 비로소 잘 끝났구나 싶었다
약간의 팁을 공유하자면 부모님과 학생의 의견이 다른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고 아이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관심사를 알아내고 소통에 노력을 들일 것.
거기에 풍부한 리액션과 무한 칭찬은 필수다
방학 때까지만 바짝 운동할 예정이라는 이 친구
그때까지 지금처럼만 열심히 잘 따라와 줬으면 한다
내가 잘 이끌어야겠지
개학 후에 수업을 마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시원섭섭하다
마치 학생들이 개학하면 엄마들이 방학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