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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free Jan 25. 2023

필라테스 강사의 젊은 남자 회원 이야기

강사들의 하루 끝


평일에 일하는 센터 중 한 곳은 오래되고 낡은 구건물에 있다

주변은 사방으로 새로운 건물과 대단지가 들어서 있는 터라

길만 건너면 분위기가 다른 이 구건물은 다른 의미로 눈에 띄었다

1층에 떡집과 과일가게가 있어서 내가 새벽 7시쯤 출근하는 날에도 여전히 일찍이 오픈되어 있는 걸 보면

내가 일하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힘든 축에도 끼지 못하겠구나 싶어 자기 연민을 내려놓고 새삼 겸손해지게 된다

이 건물 2층은 학생 대상으로 하는 공부 학원들이 있고 3층은 헤어숍, 무용학원과 내가 일하는 필라테스 샵이 있다



내 또래 남자회원님의 첫인상은 세상만사 고단하고 일에 찌든 느낌이었다

직업은 학원강사. 필라테스 센터 아래층에 있는 논술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님이다

나는 운동 지도자로서 힘든 구석을 티 내지 않을 뿐, 같은 강사 처지라서 그런지 내 고단함을 숨김없이 보였다면 저런 아우라가 나왔겠다 싶은 첫인상이었다



회원님의 운동 목적은 건강증진과 체형교정이었다

다른 강사님과 필라테스 수업을 몇 회 진행하다가 시간 조율로 인해 나에게 인수인계로 넘어온 상황이었다

그간 수업했던 차트와 문진표를 미루어 짐작하여 최대한 목적에 맞게 수업 준비를 했다

아래층 학원에서 일하다가 부랴부랴 오셔서 간단한 인사와 함께 수업을 진행했다

동작을 다양하게 준비했는 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유연성이 부족하여 많은 움직임을 하는 것보다 하나를 하더라도 확실히 하자는 느낌으로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했다

하는 동작마다 절규를 하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내가 밉다고 말하셨다



회원님의 고통은 강사의 보람을 느끼게 한다

대개 운동 수업에도 기승전결이 있기 마련인데, 회원님이 컨디션 안 좋을 경우를 제외하고

운동이 끝날 때까지 아무 자극 없이 무미건조하게 수업이 끝나는 경우 회원님은 운동을 하다가 만 느낌이 들 수 있다

컨디션에 따라 가능한 한 체력 이상을 쓰며 고통을 느껴야 근력도 성장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밉다고 하는 말은 깊게 생각을 안 하는 편이다

매번 그렇게 말하면서 재등록도 하시고 꾸준히 나오는 걸 보면 실제로 농담인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업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잠깐 쉬는 시간에는 스몰토크 주제도 다양해진다

평소에 글과 그림 음악 등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사실 글쓰기에 관련하여 더 깊게 물어보고 싶지만 원활한 수업을 위하여 간단히 학원생활 정도만 물어본다

강사로서 힘든 점이나 식사 메뉴 또는 하루 일과를 물어보기도 한다

대개 모든 회원님들에게 물어보는 주제이기도 하다

여느 때처럼 수업 중간에 기구 세팅을 하며 회원님께 오늘은 뭘 드셨는지 물어보았는 데 충격적인 답변을 들었다



맞은편 00 카페에서 무려 커피를 1리터씩 팔더라고요, 그래서 아이스 바닐라 라테 1리터를 마셨어요. 밥 먹는 데 시간 소요도 안 되고 좋더라고요



그것은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끼니를 때우나 싶고 갑자기 내 식사량과 대비하여 스스로가 돼지 같아 보이는 순간이었다

나는 먹기 위해 일하는 사람인데.. 식욕이 없다는 건 참 신기하고 부러운 것이었다

회원님은 평소에도 점심은 주로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 정도로 때운다고 하셨지만 저녁 열한 시가 다 되어가는 시점에 하루종일 커피 일 리터만 마셨다는 것은 건강에 대한 걱정과 함께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끔 하였다


회원님 하루에 커피 한 잔만 드시면 아무리 열심히 운동해도 건강 유지가 어렵습니다
간단하게라도 탄단지 꼭 챙겨주세요



이 코멘트와 함께 강사 둘의 하루는 마무리가 되었다

퇴근길 마음속으로 되새긴다

연말동안 열심히 먹은 나 자신 반성하자

올해는 보다 건강하게 섭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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