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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 Dec 20. 2020

어느 읍의 도서관

작은 도서관을 만났다.

 인구가 채 몇백 명이 되지 않는 작은 읍에서 일한 적이 있다. 무려 2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20대 중반이었던 내게 연간 100만 원이 넘는 책 지출은 너무 과했고, 들고 이사를 할 수도 없었다. 나는 과감히 책 지출을 줄이기로 했다. 그러다가 찾은 것이 아무리 봐도 노인정이나 돌봄 유치원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은 작은 도서관이었다.


 일주일에 여는 날도 불규칙적이었다. 그래서인지 한번 가면 몇 권의 책을 잔뜩 빌려왔다. 작은 도서관인 데다 그곳은 시골.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시설이라는 것이 더 맞았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실내는 아이들을 위한 책들과 낮은 책상이 가득 모여있었다. 책도 청소년, 어린이, 유아를 위한 책들이 많았다. 그 사이사이로 내가 읽을만한 책들도 물론 잔뜩 보였다.


 시내에 있는 큰 도서관이 장서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혹은 원하는 책을 다 사는 것이 가장 즐거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조차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가장 가까이 있는 도서관이 가장 좋다. 도서관과 내가 사는 곳은 걸어서 불과 10분 정도였다. 그것도 걷기 싫어서 게으름을 부리기도 했지만 내리막을 내려가서 무슨 책이 있을까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종래에는 몇 안 되는 성인 서가의 책 위치를 눈에 익혀버려서 그다지 읽고 싶지 않았던 책을 집어 들기도 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도서관의 사서는 한분이셨다. 이곳을 떠난 후 몇 년 뒤에 작은 도서관들에 대한 책을 읽었다. 전국에 책을 못 읽는 사람이 없도록, 작은 도서관을 열심히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막연히 시에서 운영하겠거니 했는데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고 했다.


 도서관의 이름도 꿈꾸는 도서관이었다. 2006년부터 시작했다고 했으니 역사가 꽤 깊다. 그럼에도 안의 집기나 서가들이 모두 깨끗했고, 아마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서관이라는 시설과 워낙 떨어져 있는 곳이다 보니 이곳에 있는 몇 안 되는 아이들과 어르신들은 이 도서관에 글을 배우고 숙제를 하러 오는 것이 문화생활의 대부분이기도 했다. 가을이면 땅콩이 도서관 앞에서 말라갔다. 겨울에는 하얗게 고드름이 얼었다. 고작 열람실 하나의 크기도 되지 않는 도서관인데 손님은 꼭 방앗간에 참새들이 드나들듯 끊이지 않았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전근을 가게 된 날, 내 마음속에 남아서 계속 마음이 쓰이던 곳 중 하나도 도서관이었다. 사서님께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많이 아쉬워하셨다. 내가 몇 안 되는 다독자였고, 아마 그 해의 최다 대출자였을 것이라 했다. 자주 올 수 없는 만큼 책을 잔뜩 빌리곤 했고, 수시로 연체를 하긴 했지만 언제나 열정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는 이용객이었다고 한다. 언젠가 한번 그곳을 다시 갈 수 있게 될까. 관광지도 딱히 없는 동네기에 정말 제대로 마음먹고 찾아가지 않는다면 찾을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찾고 싶은 곳. 내게 그 작은 도서관은 낯선 장소에서의 한줄기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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