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며 청춘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고 있다. 핸드백 속의 다이어리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쓰기 시작했으니, 14년째다. 본가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차곡차곡 한 해를 보낸 다이어리가 늘어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이번 삼백 육십 오일을 잘 살아낸 것이 뿌듯하다. 그리고 내년도 또 다이어리와 함께 살아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다이어리에는 많은 것이 담긴다. 갔던 장소, 한 일, 만난 사람들, 쓴 돈, 나의 마음 같은 것들. 처음에는 잊어버리는 것이 무서워서였고 그다음부터는 습관이 되었고 몇 년 후에는 의미도 부여하게 되었다. 매일 매일 기록하지는 않아서 하루의 기분을 알기는 힘들다. 매일 쓰는 것을 생활화 하면 좋겠지만 나 자신에게 강요하면 또 다른 강박이 될까봐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기억해야할만한 일이 있을 때는 다이어리를 펼치게 되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일들을 적다보면 비슷한 날에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부모님 생신 때 선물을 고민한 흔적, 명절에 일찍 올라와야 해서 심란했던 마음.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허무해진 날들이나 화가 났던 날들. 회사에서 겪은 불합리한 일. 예기치 못하게 많은 지출을 하게 되어서 당황했던 것. 몇 년 동안 적다보니 내 생활패턴이 실제로는 많이 변하지 않은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아, 사람이 쉽게 변하는 게 아니구나.
거기에 각종 SNS에 올리는 사진이나 기록들까지 합하면 제법 기록 덕후라고 할 수 있을 법한 하루 기록을 남기는 셈이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길에서 주운 500원짜리 동전이나 아파트 단지를 지나가다 만난 길고양이, 비타민 음료 병을 땄는데 ‘한 병 더!’라고 쓰여 있던 소소한 행운 같은 것들.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던 하루의 노을.
지금의 내가 청춘을 살고 있다고 한다면 그 청춘을 이루는 것은 내 소소한 하루들이겠지. 달라진 점을 볼 때 반성도 한다. 다이어리를 펼치면 나는 나의 중심을 알 수 있다. 살아가고 싶은 이상적인 방향을 잊지 않게 해 주는 것. 마음먹었던 것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게 하는 것. 하얗게 불태우는 삶은 아니더라도 숯불처럼 잔잔하게 따스한 삶이 되고 싶어서 다이어리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