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이 많은 아이였다. 대통령이나 과학자 같은 거창한 꿈 말고, 눈높이 선생님이나 집 앞 분식집 주인(텃밭에 채소를 길러 재료비를 아끼겠다는 전략까지 있는) 같은 생활 밀착형 꿈이었다. 인형과 놀 때에는 인형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만화책을 볼 때에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을 때는 나도 글 쓰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세상에는 예쁘고 진귀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나는 그것을 살 수 있는 환경이 안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사려면 언제나 돈이 필요했다. 혹은,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신기한 것은, 많은 아이들이 그럴 때마다 '돈을 벌면 되지!'라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나는 '내가 만들면 되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자면, 얌전하고 공부 잘하는 첫 아이를 희망했던 어머니께는 뜻하지 않은 재난이었을 것이다. 향나무의 향이 나는 향수가 가지고 싶어서 학교의 향나무 이파리를 꺾어 물에 담가 두었던 일이라거나, 멀쩡한 옷이나 양말을 뜯는 것은 사고 축에도 끼지 못했다. 가끔 집에서 사고를 치고 엄마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나는 당당하면서도 양심은 있었는지 우물쭈물거리곤 했다. 내 딸이 그랬다면 나는 엉덩이를 팡팡 때렸을 것 같은데, 그런 종류의 사고는 혼내지 않으시던 어머니의 이해심이 이런 나를 만든 것인지 모른다.
고등학생 시절과 대학생 시절은 평화로웠다. 그리고 아마도 그 시절쯤이 내게는 취미를 잔뜩 생각할 수 있는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기였을 것이다. 넓어진 세계와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인터넷이 모두 나의 스승이었다. 하고 싶은 것들의 리스트가 늘어났다. 인생의 목표도 생겼다.
글을 쓰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싶고,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날들. 끊임없이 여러 사람들이 자극을 주는 통에 지금도 내 세계는 자꾸 넓어지고 있다. 투자할 총알이 장전되면, 부동산이나 주식에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취미에 쏟아붓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했다.
그런데 한 번 사는 인생,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지 않을까?
20대를 넘어 30대를 지나가고 있는 지금, 내가 조금씩 넓혀왔던 취미의 영역들이 합쳐지거나 덧씌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일단, 하고 싶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 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다. 칼을 뽑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는 비장함은 굳이 필요 없다. 해 보고, 나와 안 맞으면 그만두면 되니까. 취미의 영역이란 그런 것이고, 그렇게 그만둬도 또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취미니까.
내 얕고 넓은 취미생활은 마치 천에 물이 스미듯이 오늘도 넓어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