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올해의 목표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의 새해 첫 일기

by 비온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 작성한 글입니다!)


2020년이라니.


다이어리 표지에 적힌 숫자가 유난히 눈에 밟혔다. Y2K 사태에 걱정하던 밀레니엄 카운트로부터 20년이나 흘렀다니, 맙소사.


사실 이런 걱정을 할 시간도 없이, 새해 첫 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태평양을 건너는 출장은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것에 비하면 걱정거리가 많은 내용이었다. 1월의 목표가 강제로 생겨버렸다. 무사히 출장 갔다 다녀오기. 나이 차이가 나는 출장자 분들을 모시고 가는 출장은 늘 어려웠다. 취향이 비슷하고 친한 사람이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출장비는 한정되어 있고, 먹고 자고 숨만 쉬어도 돈이 들고, 교통비도 물론 깨진다. 당연한 일이기는 해도 하나하나 계산해서 최적의 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다. 낭비하지 않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별 탈없이 출장을 마쳤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올해의 목표를 적는다. 작년에는 대부분의 목표를 달성했더니, 친구들에게 독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는 작년보다 책을 한 권 더 읽고, 작년부터 하고 싶었던 캘리그래피와 스페인어를 배우고, 가족들에게 조금 더 잘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머지는 작년과 비슷한 것들이다. 매년 목표가 비슷하지만 이제는 무작정 살 5킬로 빼기, 이런 나를 혹독하게 몰아치는 목표는 세우지 않기로 했다. 나는 원래부터, 그런 것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하게 자라지 않았다. 천천히 여유롭고 느긋하게 해야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작년의 목표는 중국어 자격증과 책 출판하기, 그리고 독서 100권 하기가 제일 컸다. 소소하게 하려고 한 것도 있고, 크게 판을 벌렸던 것도 있다. 연말에 중국어 자격증을 따고 나니 비로소 한 해가 간 느낌이었다. 운동도 꾸준히 습관처럼 하고, 아. 우쿨렐레도 꽤 진도가 많이 나갔다. 올해도 등록했으니 선생님과 아르페지오 주법을 마스터, 까지는 아니더라도 잘할 수 있게 연습해야지. 올해는 지금껏 가보지 않은 나라를 한 군데 정도 여행해 봐야겠다. 대만에 고양이 마을이 있다던데 꼭 가보고 싶다. 요즘 한국 사람들이 많아져서 여행의 낯섦이 줄어들었다던데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할 것 같다.


무언가를 하나 하면 또 하고 싶은 것이 생긴다. 즐거운 일이다.


그러니까 올해도, 열심히 살아봐야지.





* * *

(8월에 쓰는 하반기의 목표 설정 점검 일기)


새해 썼던 첫 일기를 다시 읽었다. 출장으로 정신없던 날이었지만, 그래도 꽤 희망에 차서 일기를 적었더랬다. 출장으로 가게 된 미국에서 여정의 막바지에 코로나-19(그때는 우한 폐렴이라고 했지만) 소식을 들었고, 하지만 내가 간 출장지가 모두 국제 행사였기에, 그냥 지나가는 감기 정도로만 생각을 했었다.


독서와 스페인어는 예정대로 시작하게 되었지만, 다른 목표들은 조금씩 어긋나고 있다. 캘리그래피는 수강생을 모집하지 않아 재봉틀 수업으로 대체했고, 가족들에게 잘 하자는 목표는 가족들을 보러 고향에 내려가는 것조차 힘들게 했다. 운동도 당분간은 집에서 간단하게 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다.


내 인생의 날들은 대부분 평온하고 굴곡이 적어서, 새해에 생각한 목표는 나의 게으름이나 인사발령이 아니라면 실행부터 못하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올해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나만의 욕심으로 무언가를 하기에는 전 세계 사람들의 시계가 평소에 비해 느리게 가고, 혹은 멈춰 있는 기분이 든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2020년 1월 1일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흘러가는 사회의 모습이,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비록 목표가 조금씩 수정되기는 했지만,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올해도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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