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커피를 마시는 일은 퍽 번거롭다. 단열 텀블러가 아니라 머그컵을 쓰는 내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했다. 종이나 티슈를 갖다 대는 것은 사실 일회용이라 계속 신경이 쓰이고 있던 참이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자연과학을 전공한,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 과학자(레벨 100중 10 정도의)가 아닌가! 그맘때쯤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코바늘로 만든 티 매트와 티 코스터였다. 쉽게 말하면 식탁보와 컵받침. 거미줄처럼 대칭적이고 고운 모습을 하고, 적당히 포근해서 물기를 흡수하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코바늘과 실 가닥이라는 도구는 구하기도 쉬워서 정말 매력적이었다.
내가 예전에 일하던 곳은 정말 옆에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두메산골 같은 읍이어서, 코바늘 뜨개질 재료를 살만한 곳도 따로 없었다. 인터넷으로 뜨개실과 뜨개바늘을 주문한 그 날은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입사하고 새롭게 시작하게 된 취미였고, 당시에 조금씩 레트로와 빈티지 소품들이 유행하고 있던 시절이어서 더 그랬다. 인터넷 카페에는 휘황찬란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내 모토는 어디까지나 실용성! 내가 즐겁고 내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티코스터로 멋지게 쓰곤했던 도일리. 옆에 있는 바늘꽂이는 지금도 아주아주 잘 쓰고 있다!
처음 눈꽃 도일리를 보았을 때 이거다! 싶었다.
아주 얇고 넓은 내 취미생활의 지평을 보건대, 높은 확률로 이 취미활동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깨닫긴 했다. 집안에서 한가롭게 뜨개질만 하기에는 내 주변에 논밭과 일거리가 많았고, 쉬는 날마다 부산을 내려가니 한동안 잊어버리고 살기도 했다. 다만, 한번 배워놓은 코바늘 뜨개질은 의외로 엄마와 친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엄마도 소녀시절이 있었다. 엄마가 다니는 학교는 가톨릭 계열의 학교였고, 그 당시는 여성들에게 자수나 뜨개질 같은 가정 내 공예를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아직도 외가댁에는 어머니가 고등학교 때 만들었던 서양자수 편지함이 있다. 어릴 때 그것을 보면서 막연하게 엄마가 했던 것을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막상 내가 중고등학생 때는 학원과 입시교육에 지쳐 그런 것들을 생각할 참이 없었다. 직장에 다니는 어머니가 그런 취미들을 따로 가지지 않으셨던 것도 있었다. 어머니가 친구분들과 퀼트를 시작하셨을 즈음에 나도 조금씩 새로운 취미에 눈을 떴다.
코바늘에 익숙해진 다음 만든 텀블러싸개! 텀블러가 책상이나 벽에 부딪히는게 싫어서 자주 사용하곤 했다.
엄마는 당연하게도, 코바늘 뜨는 법을 알고 계셨다. 인터넷으로만 배우고 있던 내 손과 엄마의 손이 겹쳐져서, 하나하나 나는 아주 오랜만에 엄마에게 처음을 배우게 되었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니도 꼭 엄마랑 비슷하다. 엄마도 이런 거 참 좋아했는데, 오랫동안 해 지지는 않드라."
그랬다. 오랫동안 코바늘을 잡지 않은 엄마의 손이었지만, 그 습관은 아직도 엄마의 손에 남아있었다. 처음 몇 번 실을 잡아보시더니 이내 내가 끙끙대었던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실이 엮이기 시작했다. 한번 눈에 익으니 익숙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종종 엄마의 머그컵 아래에 티코스터를 두기도 하고, 사진으로 자랑을 하기도 했다.
실 하나로 수없는 반복을 통해 아름다운 무늬를 이어가는 것이 코바늘의 핵심이다. 한가닥의 실이 만들어 내는 세계가, 그 활용성이, 그리고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 가벼움이 내 마음에 크게 다가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한창 하던 때처럼 자주 코바늘을 손에 잡지는 않지만, 여름이 다가올 때나, 겨울에 포근함이 필요하면 나는 내 취미 상자를 뒤적인다. 하얗거나 갈빛을 하고 있는 실들도 상자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동네의 유기묘보호소에 있는 고양이들을 위해 만든 고양이용 모자. 본 사람마다 귀엽다는 칭찬을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