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현악기에 도전합니다 (2)

내 안의 흥

by 비온뒤

큰 연주회는 아니었다. 인근의 카페를 빌려서 동네 노인정 어르신들께 해 드리는 작은 봉사에 가까운 연주회. 무대도 좁고 청중도 15명 남짓했다. 카페는 내가 공부를 하러 즐겨 가던 카페이기도 했다. 우쿨렐레 가방을 들고 카페에 들어서자 오후의 햇살이 가득 들어찼다.


흥겨운 곡이 필요했다. 그때쯤 인기를 얻고 있던 '내 나이가 어때서'와 누구나 알만한 명곡 '소양강 처녀'같은 곡들을 선정했다. 초보인 사람들을 배려해서 코드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흰 셔츠를 입고 모두가 갈색 악기를 들었다. 마이크도 필요 없는 관객 1m 앞에서 하는 공연. 멀리서 보면 쉬이 생각될 수도 있는 연주인데 그때의 우리는 모두 긴장이 되어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어깨를 들썩이실 때마다 괜히 나도 신났다.


그 모습을 보던 지도 선생님이 이제는 내가 초보의 반열에서 벗어났다는 칭찬을 건넸다. 괜히 뿌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해 여름. 지역 축제가 열렸다. 이 곳에서 3년을 살았지만 한 번도 가볼 생각을 하지 않은 축제였다.


지역 문화센터의 수강생들은 으레 지역 축제에 초대되곤 했고, 그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 또한 평범한 일이었다. 다만 그렇게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얼마나 연습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떨릴까 하는 단순한 생각만을 하곤 했는데 나보고 그런 대회에 나가라니!


더 당황스러운 것은 수강생분들의 '또 하네'라는 평범한 반응이었다. 작년에도 나갔다고 한다. 아니, 그 축제에 매년 나간다고 했다. 곡을 고르는 것도 우리들의 일이어서 신나는 트로트곡을 골랐는데, 선생님의 의견으로 분위기 있는 곡을 하나 추가했다. 그 후로는 연습, 연습의 연속이었다. 이번 공연에도 우쿨렐레 연주자들은 초보가 많았다. 간단한 코드와 디스코 리듬으로 연습하는데도 악보를 외우고 손을 옮겨가는 게 쉽지 않았다. 연습을 할 때야 악보를 보든 땅을 보든 허공을 보든 상관없지만 축제에 나가면 시선까지 모두와 맞추어야 한다. 다들 그것을 쉬이 해 냈다. 헤매고 있는 것은 나 혼자인 걸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한 달의 시간을 거쳐 악보를 모조리 외웠을 때는 뿌듯하기도 했다. 결국 악보를 펼쳐놓고 하는 공연이 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단체복을 아예 맞춰 버렸다. 랩 스커트가 유행하는 때다. 화려한 꽃이 그려진 랩스커트를 검은 티셔츠 아래에 걸치니 하와이 부럽지 않은 룩이 완성되었다. 찌는 듯한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우쿨렐레를 든다. 앞에는 기타를 치는 분들이, 뒤에는 우쿨렐레를 들고 살랑이는 분들이 박자를 맞추어 음을 만들어낸다. 관객은 공연자의 가족들과 푸드트럭의 사람들, 그리고 인근을 지나가다 들른 관광객 정도가 다였다.


연주. 공연. 악기. 이런 단어가 이제는 내게도 낯설지 않다. 코로나 탓에 벌써 반년 이상 강좌를 등록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연주도 소홀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Over the rainbow'와 '에델바이스'는 느지막한 오후 연습하고, 이제 막 발을 들인 아르페지오 주법도 똥땅 거려 본다.


우쿨렐레의 그 가벼운 음색이 좋다. 일상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 주는 것 같아서.

얼른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다. 우리 아저씨, 아주머니들과 함께 잔뜩 연주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