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마음먹으면 하루
아크릴 물감을 처음 접한다면?
아직도 명화 그리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명화 그리기라고 하면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사실 명화 그리기는 그림의 색을 잘게 잘게 쪼개서 아크릴 물감의 번호로 쉽게 칠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컬러링의 일종이다. 반 고흐의 작품이나 모네의 작품, 풍경화 같은 것들이 가득하고 종류와 크기도 다양하다. 그런 만큼 난이도 또한 천차만별이어서, 색을 10개 내외로 쓰는 작품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몇 날 며칠을 그림에 소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멋모르고 복잡하고 예쁜 그림을 선택했다가는 수없이 많은 색의 세계에 깜짝 놀라는 경우도 다반사다.
바로 내가 그랬다. 할 일이 없는 주말, 중고로 구매한 명화 그리기 세트에는 색이 서른 가지나 들어 있었다. 겉으로 보면 별 다를 것 없는 풍경화인데 하늘과 구름, 바다의 물결을 표현하다 보니 한 칸의 크기는 작았고 내가 칠해야 할 공간은 한없이 넓기만 했다. 세 개의 붓 중에서 가장 큰 붓으로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마지막에 내가 들고 있던 붓이 1호 붓(가장 작은 붓)이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비슷한 푸른 계열의 색이 많다 보니 중간에 한두 칸 정도 잘못 칠해도 그다지 티가 나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기도 했다.
내 명화 그리기는 해안가 어딘가의 풍경이었다. 여름에 시작했는데 여름은 무슨. 중간에 하기 싫다고 내팽개쳐버렸더니 다음 해까지 이어간 슬픈 작품. 혹시 과정 샷이 쓸모 있을까 싶어서 찍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 샷마저 없었다면 내가 오늘 얼마나 칠했는지 앞으로 남은 것은 얼마만큼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을 뻔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다. 특히 스케치가 마음에 안 들어 포기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끔 심심할 때 나는 내 주변의 '그림러'들에게 낙서 한 장을 부탁하곤 했다. 그들이 그린 낙서들에 휴대폰이나 그림판으로 색을 칠하고 있으면 이게 바로 호강인가 싶었다. 전문가가 칠한 색보다는 못했지만, 그것 나름의 매력이 있는 편이다.
명화 그리기는 물감과 완성본이 제공된다. 창작자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약간의 디테일 정도. 물감의 양도 딱 맞춰져 있다. 나머지는 세심하고 꼼꼼하게 칠하냐, 과감한 붓터치로 야생의 그림을 완성하느냐다. 가이드라인이 있으니 지루한 단순 반복 작업만을 제외하면 완성도는 다들 비슷비슷하다.
첫 작품을 그릴 때만 해도 아크릴 물감을 제대로 써보는 것이 처음이던 나는 물을 잔뜩 머금은 붓으로 캔버스를 채워나갔다. 이내 그러면 이도 저도 안 되는 작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외로 캔버스에 그어진 선을 지우며 그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 선들을 물감을 두세 번 덧칠해도 사라지지 않는 흉터처럼 그림 위에 흔적을 남겼다. 완성본에는 없어야 할 가이드라인이기에 방법을 바꿨다. 물감을 듬뿍 붓에 묻혀서 유화를 그리듯이 물감을 캔버스 위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옅은 색은 그렇게 하니 정말 유화의 붓터치가 살아있는 그림처럼 멋지게 라인을 덮어갔다. 나중에는 물감이 모자라지 않을까 초조해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물감은 아슬아슬하게 딱 떨어지는 양이었다. 어두운 색을 칠할 때도 다른 고민이 생기곤 했다. 바로 곁에 있는 색을 침범하지 않을까, 실수로 다른 색을 덮어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초조해하다 보면 그림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럴수록 흥미도 떨어졌다.
결국 완성품과 내 작품은 완전하게 동일할 수는 없다. 그림을 그린 사람과 내 마음, 몸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아니니 복사 붙여 넣기를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자신만의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당연히 내가 그린 것이 더 소중할 때가 많다.
출근 전에 아주 조금, 퇴근 전에 아주 조금. 여유가 있는 날은 두세 시간을 잔뜩. 시간이 삭제된다는 말을 떠올릴 정도로 캔버스 위에 물감을 올리는 작업은 즐거웠다. 내가 좋아하는 색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위치가 아닌데도 신기하게 번호를 따라 색을 칠하다 보면 내가 원했던 형태와 색이 만들어졌다. 틀린 부분은 덧칠하면 된다. 그렇게 내 작품을 완성해가다가 이 모든 것을 '안내' 없이 했을 작가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만드는 명암은 단순하지 않다. 초록색에 올라가는 그림자인데도 초록색과 검은색을 섞어서 만들어내지 않는다. 가끔은 붉은색일 때도, 보라색일 때도, 푸른색일 때도 있다. 어두운 곳에 어둠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물과 사물이 맞닿은 부분에 있는 그림자 끝에는 반드시 역광처럼 빛의 경계가 있었다. 내가 혼자 했다면 표현하지 못했을 그 부분이 만들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 새삼 그림을 그리는 일에 들어가는 엄청난 공을 깨닫는다.
일 년도 넘게 내 식탁 위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 사실 그림이라는 것은 사치품이고, 집에서 하는 취미생활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처치곤란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완성할 때의 성취감, 즐거움, 스스로 원한 고생이기에 고생스럽지 않은 그 기분과 열정을 일상에서 가지다 보면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분출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를 끝내고 나면 쉽게 다른 것에 도전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작은 공간을 깨알같이 칠하다 보니 답답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명화 그리기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아마 누군가가 안내해 주는 길을 따라 조금 쉽게 멋진 작품을 완성하고 싶은 욕심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걸 하고 있을게 아니라 그림 그리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말이다.
고난과 역경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