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는 일

마흔이 되기 전까지

by 비온뒤

대학 때부터였을까. 처음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전해주었던 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이다. 고등학생 때 일 수도 있고, 대학생 때였던 것 같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카드는 어쩐지 늘 친구들에게 주고 싶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문구점에서 파는 100원짜리 안쇄엽서에 적어주기 시작했다. 어차피 매일 보는 친구들, 매일 문자를 하는 사람들, 메신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할 말이 많지도 않아서 대부분의 엽서가 시작을 '어제도 봤는데 새삼스럽게 카드를 쓰려니 쑥스럽네.' 같은 민망한 인사였다.


그런데 그게 습관이 되고, 내게 있는 연례행사가 될 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알았다면 기록을 열심히 남겼을 텐데 말이다. 시험 준비를 하던 해와 유학을 가던 해를 제외하면 나는 열심히 카드를 썼다. 근사하게 꾸미는 트리나 벽장식은 없어도 작은 리스를 만들거나 주변에 있는 나뭇잎, 열매를 모아서 카드를 만들었다.


해마다 카드를 만드는 데에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 해의 유행이 뭘지, 내 주변에서 싸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있을지,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은 무엇일지. 콜라주 기법을 이용해서 만든 적도 있고 그림을 그리거나 실을 붙인 적도 있다. 근사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도 시간 부족으로 하지 못할 때도 많다. 인스타가 활발해진 요즘은 인스타로 검색을 해 본다. 괜찮은 견본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허락을 맡고 내 카드에 사용한다. 올린 사람만큼 전문적이고 예쁘진 않아도 내 스타일에 맞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어차피 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이러니 저러니 말할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인가!

아마 2014년쯤 보냈던 카드의 흔적.


카드는 보통 30~40장을 쓴다. 제일 많이 썼을 때는 40장을 넘게 만들어 본 적도 있고, 제일 적었을 때는 30장이 채 되지 않게 만들었다. 거기에 예전에는 펼치는 형식의 카드를 만들었는데, 몇 년 전 수채화용 엽서를 100장쯤 사서 한참 남아버린 이후로는 3년째 그 엽서를 쓰고 있다. 흰색이라 좀 지겹긴 하지만, 올해 열심히 다 쓰고 내년에는 조금 더 고급지고 멋진 재료를 사용할 꿈을 꿔 본다.


해마다 만든 카드들은 어렴풋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2014~2015년의 카드는 특별했다. 당시 시골에서 살았던 나는 주변 산으로 들로 직접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빨간 노간주나무 비슷한 것의 열매와, 길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억새풀을 꺾었다. 구상나무는 아니었지만 폐교의 전나무와 향나무도 트리 모양을 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빨간 잎을 가지고 있는 남천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에 제격이었고, 겨우살이 장식을 위해서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겨우살이를 직접 꺾기도 했다. 무성한 초겨울의 나무는 내가 끝을 조금 다듬는다고 해서 티도 나지 않았다. 거기에 대부분은 버려진 나무들이었고, 남의 집에 들어가 꺾는 일도 없었으니 다 자연이 준 선물인 셈이다. 바닥에는 내 손톱만 한 솔방울들이 가득했고, 그 솔방울 중 일부는 보통의 솔방울이 아니라 마치 장미모양처럼 예쁘게 퍼지는 히말라야시다 나무의 솔방울이었다. 모은 재료를 하나하나 잘 붙여서 카드를 만들었는데, 카드의 무게가 생각보다 꽤 무거워서 놀랐던 기억만 가득하다.

도시로 나온 후부터는 그런 재료들을 구하기가 꽤 어려워졌다. 구한다고 해도 먼지에 쌓여있어 마음에 차지 않는다. 화방에 가서 잘 다듬어진 재료를 사려고 했더니 웬일, 부르는 게 값이었다. 결국 몇 가지 꼭 필요한 재료만 손에 든 채로 화방에서 쓸쓸히 퇴장해야 했다. 한창 컬러링과 캘리그래피에 관심이 있었던 때부터 지금까지 내 카드는 이것저것 붙여서 만드는 카드에서 수채화와 아크릴 물감, 색연필이 공존하는 카드가 되고 있었다. 디자인을 한번 생각해 놓으면 써먹기 편했고, 칠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니 각각의 카드가 개성 있기도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지만 어차피 시간을 들여 만드는 카드니 상관없었다. 방수 펜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겨울을 담은 카드들이 늘 전국으로, 세계로 발송되었다.

2012년카드.jpg 특이하게 만들고 싶었던 카드

누군가는 내게 이런 일을 왜 하냐고 핀잔을 준다. 나 자신도 새삼스럽게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카드를 보내게 되었는지. 소중한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늘다 보니 늘 내 카드들은 다른 이들의 손으로 흘러간다. 대부분의 카드에 답장을 받지 못할 것도 알지만 그들이 잘 받았다고 이야기해 주는 한마디에 올 한 해도 잘 살았구나, 하는 기분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내게 소중한 모두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면서 맞이하는 연말이라니.

다만 언젠가는 마무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카드를 보내는 날은 마흔이 될 때까지로 마음먹었다. 그전까지는 마음껏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만들고 싶은 카드를 만들고,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잔뜩 보내기로. 하나하나 내 손끝이 닿은 것들의 그들의 겨울을 조금이나마 따스하게 만들어 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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