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현악기에 도전합니다 (1)
괌에 가면 우쿨렐레를 사 올까
악기는 내게 늘 가깝고도 먼 영역이었다.
초등학교 때는(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화석의 정석이라는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바꿔가며 다닌 세대다) 여느 여자아이가 그렇듯 피아노 학원을 다니곤 했다. 나는 전학을 두 번 해서, 학교를 총 세 곳 다녔다. 물론 피아노 학원도 똑같았다. 조금 아쉬운 것은 선생님들이 어땠는지는 그리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학원들의 어렴풋한 풍경이나 영창 피아노의 조금 떨어져 나간 금박, 좁은 패널 방 안에서 다른 아이들이나 언니 오빠들의 피아노 소리를 들었던 기억은 선명하다. 그중 내가 가장 선명하게 다닌 피아노 학원은 두 번째 학교에서의 피아노 학원이다. 학교 바로 옆의 언덕 위에 있던 그 학원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바이올린을 배우는 친구들도 있었고, 창문이 있어서 바깥으로 학교의 뒤뜰이 보였다. 초등학교 내내 학원을 다녔는데도 사실 나는 피아노에 그리 열정적이지는 않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오후 느지막한 시간, 주로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피아노 학원의 납작하고 길쭉한 의자에 몸을 구겨눕히고 낮잠을 자는 것이었다. 연습을 열 번, 사과를 열개 빗금으로 칠하고 나면 어김없이 살살 졸리는 그 기분. 작은 방이 꼭 내 방 같아서 창문을 열어놓고 학교의 고학년 수업 종소리를 들으면서 깊이 자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체르니 30, 쇼팽 같은 것들을 치던 아이들에 비해 나는 진도가 느렸다. 집에 피아노가 없는 것도 아마 한몫했을 것이다. 그 부분은 늘 내 마음에 아쉬움으로 남았기 때문에, 대학에 와서는 청운의 꿈을 품고 처음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피아노를 샀다! 우리 집에도 피아노가 있다! 나도 여행 가서 라이브 카페에서 피아노도 치는 그런 근사한 사람이 되어야지!
일이 그렇게 잘 풀릴 리가 없었다. 피아노는 은근히 시들해졌고, 다행히 몇몇 곡 만은 머릿속에 남아 손의 감각으로 치는 정도가 되기는 했다. 피아노는 악기 특성상 휴대성이 굉장히 불편한 축이라, 집을 떠나 독립한 이후에는 거의 손대지 않는 집안의 보물이 되고 말았다.
그때 즈음 눈에 띈 것이 바로 문화센터의 우쿨렐레 교실이었다. 토롱토롱 거리는 가벼운 음색이나, 들고 다녀도 핸드백 정도의 무게밖에 되지 않는 휴대성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거기에, 오랫동안 내 인생 곡으로 소개하는 곡도 있었다. 정처 없이 떠도는 외국인 노동자 시절, 미국의 뮤지컬 드라마 '글리 Glee'의 시즌 1 마지막 편에 나왔던 기타와 우쿨렐레 콤보로 연주한 'Over the rainbow'는 모든 일이 잘될 것 같은 부스러기 같은 희망을 던져주곤 했다. 기타의 반주와 우쿨렐레의 포인트로, 두 남자가 다독여주는 노래는 수없이 들어왔던 곡임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마음을 먹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다만, 문화센터의 수업 신청 경쟁률이 생각보다 높았다. 아침 느지막이 온 게으른 수강 지망생에게 이 동네의 열정적인 수강자들은 견고한 벽이었다. 겨울이 한가운데였을 때 한번 실패한 후, 대기 인원에 겨우 올라 수강을 시작하게 되었다. 무려 우쿨렐레 수업의 막내였다. 난 30대인데!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교대근무자가 많은 동네에 살고있다한들 문화센터의 강의란 은퇴를 했거나 아이를 키우고 있어 휴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 같이 생각되고는 했다. 모든 수업을 나갈 수 없었지만 다행히 쉬는 날이나 야간 근무가 있는 날은 오후에 들를 수 있겠다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우쿨렐레를 당장 사는 것이 문제였는데 집 안에 우쿨렐레를 쓰지 않는다는 친구에게 무상대여를 제공받았다. 친구의 동생이 쓰다가, 친구가 쓰다가, 결국 내 손까지 온 우쿨렐레를 소중히 품에 안고 뚱땅거리는 생활을 시작했다.
현악기는 내게 오랫동안 미지의 세계였다. 대학에 가서도 그 흔한 기타를 배울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멜로디가 아니라 코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악보는 너무 어려웠고, 슬쩍 배워본 손가락 운지법은 또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었다. 화려한 주법을 뽐내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나는 겨우 '나비야 나비야'를 켜고 있었다. 회사에 나가는 날은 그나마 나갈 수도 없었다. 매주 화요일 오후 1시. 두 시간의 음악 생활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나는 게으른 수강생이었다. 집에서 연습도 그다지 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마스터하고 난 뒤에는 열정도 조금 사그라들었는데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우쿨렐레와 기타를 모두 하는 이 교실 사람들이 연주회를 한다니! 두려운 마음으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