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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 Oct 30. 2020

39.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다는 말

로맨틱한 걸까?

 얼마 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다.  기상청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벌써 십몇 년 전부터 직원들 사이에서 떠돌던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내가 입사 한 직후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고 얼마 전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드라마의 제목을 보자마자 본부에 있는 아는 직원분들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주인님 날씨에 관련된 드라마가 나오는 거 같던데, 혹시 본청 배경으로 찍은 거 아니에요?"


 드라마 내용을 스포일러 하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는데 들려온 답변은 아쉽게도 전혀 관련 없다는 자신은 모른다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드라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대체 이건 뭐 하는 드라마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배우 이름도 포스터도 예고편도 보지 않은 상태였기에 인터넷에 원작이라고 나와 있는 예쁜 표지의 소설책 붙어 집어 들었다.


 드라마는 결국 정주행을 하지는 못했다. 교대 근무를 하는 사람은 드라마나 예능 방송에 본방사수를 하기가 정말 힘들기 때문이었다. 긴 호흡으로 이끌어가는 드라마보다 한 방에 기승전결을 다 볼 수 있는 영화를 선호하는 내 성격의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다 읽어버린 소설책은 내 마음에 아주 쏙 드는 소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책을 먼저 읽게 되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눈이 아주아주 많이 오는 동네에 있는 독립 서점을 배경으로 그러지는 잔잔한 로맨스. 책만 읽고 있다면 사실 내가 예전부터 좋아하던 일본의 로맨스 소설을 읽고 있는 그런 기분도 들었다. 물론 모든 소재는 다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소복소복 오는 눈이 그려지는 듯한 광경이나 남녀 주인공이 함께 앉아 있는 장면이 그려질 때는 마음속으로 두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었다. 얼마 전 드라마 일부를 찾아봤는데 소 살만큼 잔잔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드라마 나름대로 배경 음악과 현실감이 더해지니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시간을 내어서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고 싶을 정도로. 소설의 결말과 다를지 같을지 비교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그러고 나니 의문이 생겼다. 대체 왜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다고 하는 건지. 사실 제목을 볼 때부터 '어라,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다는 말은 보통 가기 싫을 때 하는 핑계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는 핑계 중에 가장 좋은 핑계가 날씨 핑계다. 날씨가 좋아서 좋지 않아서. 가장 좋은 변명거리이기도 하다. 숙제가 하기 싫은 이유는 날씨가 좋으니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어서일 때도, 날씨가 덕분에 괜히 우울해져서 일 때도 있다. 거기에 '예상치 못한 날씨로 인해'라는 예보관으로서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원인까지 덧붙여지면 훌륭한 기승전결이 완성된다. 이런 의문은 책을 다 읽고 나면 해결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들의 아픔과 내면의 갈등을 보면서 눈이 그려진 표지에 단순하게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작가분이 그린 것은 실제 날씨가 아니라 마음의 날씨를 표현한 것이었다. 눈이 녹으면, 날이 좀 더 다사로워지면. 그때는 좀 더 용기 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에휴. 쓸데없이 직업병이 발동한 것이었다. 날씨라는 표현이 내게는 너무 직접적이라서 변화무쌍한 여러 가지 현상을 날씨에 빗대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말았다. 어쩐지 드라마 소설에 조금 미안해졌다.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거 같다.


 결론은 일요일 오후에 읽기 딱 좋은 이야기. 책은 평화롭고 드라마는 귀여우니  사실은 기상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독자로서 꼭 추천하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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