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이 되다니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40살의 소정 씨를 상상하는 게 요즘 저의 즐거움이에요. 아직도 양말은 흰색만 신으시나요? 여전히 속옷은 검은색만 입으시고요? 단 것을 엄청 싫어하셨는데, 지금은 잘 드시나요? 요리를 정말 못하시잖아요. 짭짤한 계란찜을 만드는 일은 성공하셨나요? 계량을 하지 않아도 툭툭, 간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되셨을지 궁금해집니다. 여전히 설거지가 귀찮아 식사를 미루시나요.
아마도 혼자 사실 것 같은데. 큰 서재를 만드셨을 것 같아요. 볕이 들지 않는 곳에 책장을 놓고 창 앞에 책상을 둘 거라고 하셨잖아요. 세계 문학 전집을 장식처럼 두고 싶으시다고. 피아노를 한 대 놓고 싶어 하셨죠. 건반을 보면 가슴이 울렁거려 칠 줄은 몰라도 누르고 싶어 진다고.
노란색은 좋아지셨나요? 가장 싫어하는 색이었잖아요. 그 색은 언제나 시끄러워서 괴로웠죠. 검은색을 참 좋아하셨는데. 감히 예상해보자면 그때엔 붉은색을 좋아하고 계실 것 같아요. 그렇게 강렬한 것들을 참 좋아하셨죠. 빤히 아는 것은 지겨워하시고, 결과가 예상된다면 시도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맞던가요? 진짜로 예상한 대로 끝이 나던가요? 그때쯤에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 계실까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 하고, 불필요한 상처는 받지 않게 되셨을까요? 담배는 여전히 피우시겠죠? 모든 게 짜증이 나겠지만 그런대로 넘길 수 있는 넓은 사람이 되셨길 바랍니다. 실패했다면, 어쩔 수 없지요.
기억하세요? 30살에 소정 씨는 존엄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었잖아요. 입출금 계좌에 비상금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요. 비장한 마음으로 준비했는데. 그건 어떻게 되었나요. 다 모은 돈을 들고 떠날 결심을 하셨을지 궁금해집니다. 어떤 것 하나라도 뜻대로 이룬 것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30살의 저는, 알 수 없는 삶의 흐름에 허무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고민을 20살에도 하고 있었는데, 아직도요. 40살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의미를 찾았나요?
의미라는 것은, 뜻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타인이 어떤 의도를 가졌든 내게 다가온 결과만을 가지고 결론짓게 돼요.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시간들이 내게는 큰 의미가 있었어요. 그렇게 서로 다른 부분에서 오는 상실과 고독이 늘 저를 쫓아다녔지요. 그래서 의미를 알 수 없을 것 같은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어요. 필요가 없는 일은 곁에 두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후회는 하지 않으실 것 같아요. 지금 제가 하고 있으니까요.
여전히 걷기를 좋아하시나요? 안 되는 일에 매달리고 계시는 건 아닌지요. 그게 고질병이었어요. 될 때까지 부딪히는 것. 하고 싶은 말은 반드시 하고, 하고 싶은 일도 반드시 하고야 마는 것. 예전엔 그런 제가 싫었지만 이제는 알아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잘 살고 싶었습니다. 너무 잘하고 싶었던 게 문제일까요?
언제나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바다 같은 마음을 가지지는 못해도 냉면 그릇 정도는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늘 종지만 한 마음이라 담을 수 있는 게 한정적이었지요. 다른 것을 담으려면 필연적으로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야 했습니다.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담을 수 없었는데, 사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저로서만 살아갈 수 있었어요. 딸, 친구, 애인, 동생, 누나, 사회인의 역할을 다 하기에는 어려웠어요.
기억나시나요. 정말 좋아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이 지쳐 마음을 닫고 지냈던 시기를요. 40살의 소정 씨는 어떤가요. 마음을 열고 사나요? 사람이 싫지만 그들이 가진 마음의 진정성만은 사랑했잖아요. 그러면서도 가볍게 왔다가는 관계가 싫어 멀리 떨어져 있었죠. 아시다시피 제 마음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었으니까요. 누군가를 담으려면 다른 이를 걷어내야 했어요. 하지만 깨닫는 시기가 왔었잖아요. 한 그릇에 다 담으려 할 필요 없이, 사람마다 마음에 공간을 만들어두면 된다는 것을요. 사람은 잊는 게 아니라 차곡히 정리하는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이 편해졌던 날, 정말 많이 울었잖아요.
30살의 저는 참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참 짧았어요. 가장 신기한 일은 여름이 좋아졌다는 거예요. 매미가 울어도 좋고, 날이 뜨거워도 좋아하게 됐습니다. 여름이니까 덥지. 그렇게 즐기게 됐어요. 그렇게 싫어하던 미나리를 좋아하게 됐는데, 그게 가장 신기했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정말 싫었던 것들이 하나씩 좋아지는 게 말이에요.
지금 이렇게 좋아진 것들이 다시 싫어질 수도 있을까요. 그때엔 아니, 라는 말보다 응, 이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될까요? 무슨 일 있어? 괜찮아? 할 수 있어? 라는 말에 응. 하고 대답하게 될까요. 누군가의 칭찬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까요. 아시잖아요. 저는 엄마 딸인 것을요. 누군가 내게 좋은 말을 하면 다 노리는 이유가 있는 거라고 배웠으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제는 알아요. 칭찬은 칭찬이에요. 진짜 숨은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칭찬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놓친 기쁨들이 이제 와 아까워요. 계단을 오르는 것이 너무 힘들어 꼭대기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잊듯이요. 긴 터널 속 한 줌 빛을 들고 걸으면서도 좁은 시야에 불안해했잖아요. 빛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로요. 어디까지 어둠 일지 가늠해보고 나아가는 일이 어려웠어요. 빛이 흔들리는 이유는 저의 호흡 때문이었다는 것을 완전하게 깨닫게 될까요?
30살에 처음으로 얼굴에 주름이 생겨서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 눈 밑에, 입가에 결이 생겨 내 얼굴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거울을 보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얼마나 달라졌을까 싶어서요. 그런데요. 그건 그냥 주름이에요. 달라진 것은 없어요. 선크림이나 잘 바르시길 바랍니다. 턱을 꽉 무는 버릇이 있어 늘 이가 아픈데, 그건 고치셨을까 궁금합니다. 이러다 이가 하나 빠지지 않을까 싶게 아팠어요. 긴장을 하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너무 아픈 상태라 습관적으로 힘을 빼려고 했어요. 그게 중요했습니다. 힘을 빼는 것이요.
오랫동안 지뢰밭을 걷는 것 같았습니다. 언제 뭐가 터질지 몰라 겁을 먹고 살아왔어요. 하지만 밟지 않아도 터질 것은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저를 화나게 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받아들여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혼자서 울게 되더라도, 툭 털고 살고 계시길 바라요. 다 각자의 입장이 있는 거잖아요.
저는 얼마나 행복하려고 이렇게 사는 걸까요. 좋아하는 것을 많이 찾으셨길 바랍니다. 포기하려고 하지 않을게요. 말이 길었습니다. 40살의 소정 씨는 이미 알고 계실 사실들인데 말이에요. 안녕히 계세요. 답장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