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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철 Oct 19. 2022

31살을 기다리며

30살이 되다니







  진료를 받고 약을 타러 갔다가 혼자 노래방에 다녀왔다. 딱 9곡을 부르고 나왔다. 노랫말에 한숨을 묻혀 뱉고 간주에 맞춰 조금 울었다. 집으로 가기 전 근처에 있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외할머니와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엄마와 할머니를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갔다. 이미 낮에 진하게 한 잔을 마신 상태였던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할머니가 수타벅스가 아니라서 싫어? 라고 물으셨다. 

  따뜻한 커피 두 잔과 소금 빵 하나를 계산했다. 할머니 옆에 앉아 물티슈를 드리고 앞에 잔을 놨다. 할머니는 언제나 부드러운 감의 옷을 입으셨다. 깃이 있는 어두운 색의 상의와 밑단이 단정한 검은색 바지. 늘 같았다. 옆에 앉으니 할머니 냄새가 났다. 오늘은 뭘 했는지, 밥을 먹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소정아, 네가 서른 살이지. 그 나이가 꽃으로 치자면, 이제 막 봉오리가 피어나기 시작한 때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쿨하게. 그때는 다시 오지 않아. 절대로.”     


  맞은편에 앉은 엄마가 거들었다.      


  “그래, 다시는 안 와. 그때는. 나는 혼자서 너랑 니 오빠 혼자 키우고 있었어. 돈도 없고, 직장도 없고, 자식새끼는 둘이나 있는데 하나는 갓난쟁이고. 남편도 없이 견디는 게 너무 힘들었어.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너는 어려서 몰랐겠지만 니들 유치원 보내고 나서 집에만 있었어. 불 다 꺼놓고. 새카만 방구석에 앉아서 날이 가도록 울었다. 어떻게 살아야 되나. 너무 무서웠어. 배가 고픈지도 모르고 밥도 안 먹었어.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어, 그때는.”     


  할머니는 가만 커피잔을 내려다보고 계셨다. 제과점의 로고가 찍힌 냅킨 끄트머리를 구기며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잔잔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어. 너랑 니 오빠 없었으면 나는 벌써 죽었을 거야. 니들 맛있는 거 먹이는 게 낙이었다. 너 텔레비전에서 가수들 노래하는 거 나오면 앞에 서서 춤추고 그랬어. 궁둥이를 씰룩거리면서. 니 오빠는 스파이더맨 된다고 맨날 문지방을 그렇게 타고 넘었다. 다른 애들 다 하는 거 너희도 가르치겠다고 몬테소리 영어 비디오를 샀어. 그때 물가로 한 세트에 80만 원이나 주고. 둘이 앉아서 종일 그것만 봤어. 니 오빠는 그때부터 영어를 잘했다. 유학을 보냈어야 했는데. 대학 간다는 걸 못 가게 해서. 가난해서 못 산다고 힘들어도 가르칠 걸. 너희도 배웠으면 지금 잘 살고 있을 텐데.”   

  

  엄마의 저 표정을 안다. 10살 생일에 바퀴 달린 운동화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내 친구가 그 신발을 신고와 바퀴를 타고 노는 걸 보던 그 얼굴. 나도 한 번 신어보면 안 돼? 라고 말했던 나와 그걸 보던 엄마. 마트 신발 코너에 가서 내 발에 맞는 걸 고르다 가격을 확인하고 내려놓았던, 만 원짜리 운동화를 사주던 얼굴. 엄마는 아직도 그 신발을 떠올린다. 나도 그렇다.     


  할머니와 엄마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혼자 집으로 걸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도로의 자동차 소리, 자전거 바퀴가 구르는 소리, 엄마 손을 잡은 아가들의 작은 발소리, 마을버스가 경적을 울리는 소리. 그 속에 뒤섞여 걷다 집 밑에서 담배를 피우고 올라갔다. 늦은 오후. 아무도 없는 집 거실에 앉아 볕이 드는 곳에 가만 서 있었다. 집 안으로 해가 든다는 것은 특권이다. 반지하 땅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햇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당연하게 누리는 자연의 빛이 어떤 이에게는 얻을 수 없는 갈망이 되기도 한다. 선선히 부는 초가을의 바람이 나를 지나갔다. 집 베란다 앞까지 자란 나뭇잎이 살살 흔들렸다. 

  책을 조금 읽었고, 밥을 억지로 먹고 싶지 않아 보리차를 마셨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다가 할 일을 했고, 잘 시간이 되어 양치를 했다. 화한 민트향으로 입 안을 개운하게 씻어내는 것이 좋다. 칫솔질을 하는 것도 좋다. 실제 하는 도구로 실제 하는 찌꺼기들을 말끔히 닦아낼 수 있는 게. 눈에 보이게 깨끗해지고, 그 깨끗함을 내가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게. 

  깨끗하게 만드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정리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 치울 것인가를 생각하느라 다른 생각은 할 수 없게 된다. 청소에만 집중한다. 다 치우고 나면 꼭 필요한 것만 남는다. 버리는 것이 절반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는데, 그때마다 꼭 비슷한 양의 물건을 버리게 된다. 버리는 만큼 사게 되고, 사는 만큼 버리게 되는 일이 불필요하다고 느껴져 어떤 날은 아무것도 사지 않게 됐다. 내 방 안에 들일 수 있는 것들은 늘 일정했다. 방이 너무 비어있어서도 안 되고, 너무 가득해서도 안 된다. 일정량을 유지하는 것이 청소의 일이었다.

  채우는 만큼 버려왔을까. 버리는 것만큼 채워왔을까. 양치와 세수를 하고 화장실 불을 껐다. 엄마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연예인들의 일상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표정 없는 얼굴로 그걸 보는 엄마 옆에 앉았다. 방송은 쾌활하게 이어졌고, 엄마와 나는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때 배경 음악이 들려왔다. 양희은 가수의 노래였다.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 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엄마가 중얼거렸다.     


  “맞아. 잠시 눈을 붙인 줄 알았는데. 내가 이렇게 늙을 줄은 몰랐다. 니가 벌써 서른이고.”   

  

  가수의 목소리가 잔잔히 흩어졌다.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그 말이 나를 찔렀다. 삶에 대해서 알게 되는 날이 언제일까. 오기나 할까. 지금처럼 모두 지나고 난 뒤에야 아, 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30살이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31살이 되면 지금과는 또 다르겠지. 그때는 또 뭘 알게 될까.     


  늘 선을 그어놓고 살았다. 그걸 넘어오는 사람은 모두 밀어내면서. 그게 지켜져야만 나는 존중받는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때로 어떤 사람들은 선을 넘어야만 친해지는 거라고 여겼다. 해서는 안 될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는 사이가 진짜로 친한 거라고. 그래야 한다면 나는 친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삶에는 그런 순간도 꼭 필요했다. 타인에게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을 때 내가 받을 수 있는 것 또한 냉소적인 태도였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내가 받았던 상처만큼 다른 이를 상처 입혔을 것이다. 지금까지 싫어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나에게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남에게서 본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좋은 사람까지는 아니어도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늘 나쁜 사람이었던 것만 같아 곱씹는 일이 부끄러웠다.   

  

  오랫동안 살아온 것 같았는데 20살로부터 아직 1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태어난 지 이제 겨우 30년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강산도 10년에 한 번씩 변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바뀌었을까. 사람은 언제나 변하기에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나였다. 한 해가 끝나가는 지금, 내게 남은 것이 뭔지 추려본다. 가족, 친구,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 내 방의 작은 창문과 거기로 드는 빛. 익숙한 어둠과 약간의 약 기운. 세상을 즐기려는 마음. 더 이상 인생과 싸우지 않겠다는 다짐.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살던 시절의 내 모습. 

  내가 누구인지 나도 모르던 때. 내 주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때의 내가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그렇게 자꾸만 붙들고 싶은 순간이 생겨났다. 이미 지나간 일들은 어쩔 수 없다. 돌아갈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맞다고 여겼던 결심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오는 수치심과 미안함까지가 내가 한 선택의 결과였다. 그걸 견뎌야 했다. 나 또한 좋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떳떳이 살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나만의 슬픔을 이유로 너무 많은 시간을 그저 그렇게 흘려보냈다. 때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을 것이다. 모든 것이 싫은 그 분노로 세상을 살아왔는데, 이렇게 사는 게 좋아져 버린 지금 무엇으로 힘을 얻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졌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눈물과 말이 많아졌다. 타인은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 없었다. 그게 평생의 숙제였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늘 어렵다. 우정이든, 연애 감정이든, 동료애든 어떤 형태를 취하나 타인을 사랑한다는 일은 항상 상처를 동반했다. 하지만 부모에게도 받는 것이 상처다. 하물며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타인을 사랑하면서, 상처를 받지 않는 일은 불가능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들까지도 그 사람을 이루는 조각이다. 거기까지가 그 영역인 것이다. 사람을 받아들일 때 물건을 사듯 더하고 빼며 계산할 수가 없어졌다.


  지나간 일을 붙들고 앓는 것은 나를 더 힘들게 할 뿐이다. 그때는 그랬다. 이제와 거기서 의미를 찾을 수는 없다. 그때 일어났던 일들은 거기에 묻어두고, 나는 나아가야 했다. 이제야 그 말을 이해한다. 다 지나가게 되어있다.    

 

  술을 끊게 됐다. 취하는 게 전처럼 즐겁지가 않아 굳이 마실 필요가 없었다. 담배도 끊을 생각이다. 몸에 문신을 조금 했고, 머리를 기르는 중이다. 30대가 되어서는 욕도 하지 않고, 인터넷 용어로 대화하지도 않으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점잖고 편안하게, 바르고 고운 모습으로 늙어가고 싶어졌다. 주름이 지더라도 웃음이 깊어질 수 있게. 상처를 받더라도 이겨낼 수 있게. 사는 게 버거워 울면서 집에 들어가던 날, 엘리베이터 앞에 계시던 어르신이 내게 청년, 울지 마. 괜찮아. 라고 말해주셨던 것과 같이 나 또한 괜찮다고 말을 해줄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세상이 살만 한 이유는 모르는 누군가의 작은 친절, 아는 이들의 무심한 배려, 사랑하는 사람들의 꾸중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모여 하루가 되고, 하루가 모여 삶이 된다. 그저 살면 된다. 


  다만 즐겁게.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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