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도어 딩보다 무서운 미국 보험사 (2)

미국에서 차 수리와 보험 처리한 썰 푼다.txt

by 유지니안

12월 중순에 일어난 주차장 사고가 처리되는데 무려 10개월이나 걸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처음엔 간단할 줄 알았다. 상대방이 100% 잘못이고, 보안직원이라는 목격자도 있고, 모든 증거도 확보했으니까. 바로 상대방 보험사, USAA에 전화를 걸어 사건을 접수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상대방 보험사 담당자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Happy Holidays!" 자동응답 메시지만 반복될 뿐.


답답한 마음에 우리 보험사에 연락했다.

"상대방 보험사가 연락이 안 되는데, 우리 보험에서 처리해주실 수 있나요?"

담당자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저희가 처리해야 할 부분이 없는데요. 알아서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알아서 하라고? 그럼 보험은 왜 든 거지?


우리 보험사, 사실 코스트코에서 제일 저렴한 걸로 골랐다. Geico나 AAA 같은 대형 보험사는 월 보험료가 우리보다 100달러는 더 비쌌다. 가입할 때는 "와, 코스트코 짱! 보험료 진짜 싸다!"며 좋아했는데.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여기서도 통하는구나."

남편이 한숨을 쉬었다. Bar 시험 공부해도 시간이 모자란데, 보험사와 입씨름을 하고 있으니 속이 탔다.


문득 페이스북 데이비스 한인 그룹에서 알게 된 언니가 떠올랐다.

미국 생활 10년차, 대만 남편과 결혼해서 엘리와 같은 또래 딸이 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급속도로 친해진 사이였다. 무엇보다 미국 시스템에 누구보다 빠삭하고 똑부러지기로 소문난 언니였다.

"언니, 우리 보험사가 자꾸 뒤로 빼려고 해서 우리가 직접 상대 보험사랑 이야기하게 됐어."

"응? 그게 말이 돼? 보험사랑 통화할 때 내가 이야기해볼게."




주말 오전, 우리는 동네 놀이터에서 만났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두고 어른들만.

스피커폰으로 우리 보험사와 연결됐다. 언니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직접 상대 보험사랑 이야기할 거면 뭐하러 보험을 들어요?"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10년차 경험이 어디 안 가는지 유창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홈페이지 가보니까 이런 경우에 우리를 대신해서 상대 보험사와 이야기하는 것도 당연히 당신네 보험사 일이던데요? 게다가 내가 DMV에서 봤는데, 이런 건 직접 하지 말고 보험사를 통해 해결하라고 적혀있더라구요. 이거 DMV에 가서 잘잘못 한 번 가려봐요?"


그 때부터 상대방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아, 이게 우리가 이야기하려면 우리 보험에서도 뭔가를 써야 하는데..."

그때 조용히 듣고 있던 남편이 한마디 던졌다.

"그러면 우리가 자차 보험으로 먼저 처리하고, 그걸 토대로 당신네가 상대측 보험사에게 연락해서 우리 것까지 받아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더 이상 항변할 게 없었나보다.

"알겠습니다. 이메일로 링크 보낼 테니 일단 자차 보험 처리해주세요."

하... 왜 우리 남편이 조곤조곤 격조 있게 이야기할 때는 안 듣다가, 센 언니가 윽박지르니까 듣는 걸까.




이렇게 보험이 잘 해결되어서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면 너무나 해피한 엔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월에 주고받은 이 대화 이후 7월까지도 해결이 안 됐다.


처음 요청한 건 사고 사진이었다. '사진이야 찍어뒀지.' 바로 제공.

1주일 후, 그 다음은 사건 경위서. '경위 정도야 작성해주면 되지.' 바로 제공.

또 다시 1주일 후, 이번에는 Police report.

"Police report는 왜 안 썼나요?"

Police report?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니고 단순한 주차장 door ding에도?

"미국에서는 사고나면 police report를 제출해야 보험처리가 가능합니다."

부랴부랴 사고 장소 인근 경찰서로 갔다. 경찰관이 우리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두 달이나 지난 주차장 사고를 이제 와서 신고해요? 뭐, 접수는 해 드릴게요. 여기 양식에다가 작성해서 주세요."

police report_1.jpg
police report_2.jpg


Police report를 받아 제출하니 벌써 2월 11일. 이제 자차 보험도 접수가 되었겠다, 더 늦기 전에 수리 견적을 받으러 갔다.

"보험 견적(insurance estimate)이 필요해요."

이번에는 수리점이 말썽이다. 그냥 자비로 처리하는 거면 바로 수리점에서 견적서 확인해서 수리할지 말지를 내가 결정하면 되는데, 보험사가 끼어있으니 보험 견적이 필요한댄다. 또 우리측 보험사에 연락해서 견적을 받고, 수리점에 제출하고...

"당장 수리할 자리가 없네요. 10일 후에 오세요."

2월 22일부터 드디어 수리 시작.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3월 23일, RAV4가 돌아왔다. RAV4가 없는 동안에는 검은색 쉐보레 말리부를 빌려 탔다.

그렇게 나온 비용은 수리비 4,054.61달러에 렌트비 1,189.65달러. 합하면...

"5천 달러가 넘네?"

환율 1,400원으로 계산하면 700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Door ding 하나에.

여기서 보험사가 부담한 비용을 빼면... 수리비 디덕티블에 500달러, 렌트비는 353.25달러. 즉 우리가 받아내야 할 돈은 853.25달러였다.





이제 끝인 줄 알았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이제 슬슬 지쳐가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였다.


5월 말, 오랜 기다림 끝에 상대방 보험사의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는 4,754.81달러만 줄 수 있어요. 보험 한도가 있어서요."

What? 그러면 어떻게 되는거지? 전체 금액은 우리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였다.

"우선 보험 청구액부터 변제 들어가고, 남은 돈이 있으면 네가 부담한 500달러에 대해서 보상받을 거야. 안타깝게도 렌트비는 안 된다네?"

한마디로, 상대방 보험사 USAA는 우리가 렌트비로 지불한 비용 353.25달러에 대해서는 못 주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보험사는 아무 협상도 안 하겠다는 뜻이고. 왜냐면 자기네는 보험처리한 돈은 다 받아낼 수 있었으니까. 진짜 싼게 비지떡 맞았다.

230422 우린널위해협상은못하고전달은가능해.png 우린 널 위한 협상은 못하고, 서류를 전달해주는 건 가능해.gmail
230526 니가알아서USAA에연락해라.png 너가 낸 돈은 다 못 돌려받겠는데? 한번 USAA에 직접 연락해 봐.gmail


열받은 남편이 양쪽 보험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I hope this letter finds you well..."

정중하지만 단호한 영어였다. USAA(상대방 보험사)의 100년 역사를 언급하며 시작해서, 우리가 렌트카도 RAV4급이 아닌 말리부로 절약했다는 점, 수리비 500달러와 렌트비 350달러, 회사에게는 작은 금액이지만 개인에게는 중요하다는 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I look forward to a positive resolution of this matter."


6월 중순, 드디어 답변이 왔다.

"렌트비 353.25달러까지 인정해 드릴게요. 대신 이게 최종 settlement입니다."

와! 드디어 남편이 해낸 것이다!

230616 야호렌트비굳었다.png




기쁨도 잠시, 7월이 되어도 돈이 안 들어왔다. Bar 시험에 매진하느라 더 이상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8월 초, Bar 시험이 끝나고 남편이 다시 우리 보험사에 연락했다.

"I hope to know the situation of reimbursement."

알고 보니 보상 승인금액이 잘못 기재되어 보험사 사이에 계류되어 있었다고. 하... 이놈의 미국 시스템.

우리가 다시 연락하고 나서야 우리 보험사도 움직였나보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우편으로 렌트비 353.25달러에 대한 수표(check)가 들어와 있었다.


그 이후에도 디덕터블 500달러는 돌아오지 않았다.

USAA에 문의하니 "수리비는 우리가 당신네 보험사에 먼저 지급하니까, 거기서 받으세요"란다. 우리 보험사는 "USAA에서 돈 받으면 그때 드릴게요"라고 하고.


완연한 가을이 된 10월 11일, 드디어 우리 보험사에서 메일이 왔다.

"We are going to be returning our release. Once we receive payment from USAA, we will be able to reimburse your deductible."


그리고 11월 1일, 디덕터블 500달러가 드디어 우리 계좌로 들어왔다.

231102 500달러디덕티블까지들어옴.png


12월에 시작해서 11월에 끝난, 만 10개월의 대장정이었다.




10개월.

작은 door ding 하나 처리하는 데 무려 10개월이 걸렸다. 왜 미국인들이 작은 사고 정도는 그냥 넘어가는지 알 것 같았다.

"경험 하나는 제대로 했네."

남편이 쓴웃음을 지었다.

"근데 있잖아,"

나는 계좌에 들어온 850달러를 보며 말했다.

"우리가 이 돈 받으려고 쓴 시간을 시급으로 계산하면 얼마일까?"

"...최저시급도 안 될걸?"

우리는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10개월간 전화 통화, 이메일, 경찰서 방문, 수리점 왕복, 스트레스까지 계산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시급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이겼잖아."

맞다. 우리는 이겼다.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다. 영어가 서툴러도, 미국 시스템이 낯설어도, 우리도 정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동지 팥죽을 먹으러 갔다가 시작된 이 긴 여정. 액운을 쫓으려다 만난 10개월의 대장정은, 결국 우리에게 '미국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선물했다.

이제야 작은 door ding은 대범하게 넘어가는 미국인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한 번 해본 사람은 안다. 이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다음엔 그냥 넘어가자."

"응,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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