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는 게 유달리 힘든 사람들이 있다. 나와 남편, 그리고 우리 딸 모두가 그렇다. 그리고 호텔은 우리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고는 한다. 잠이냐 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우리가 머물렀던 Davis의 Residence Inn은 나름 이름 있는 Marriott가 직접 운영하는 호텔로, 비록 3성급 호텔이지만 간단한 주방이 포함된 스위트형 객실과 무료 조식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그 '무료 조식'이라는 게, 아침 6시 반에서 9시까지만 제공된다. 사실 조식 시간은 단지 우리가 묵은 호텔뿐 아니라 대부분 호텔들이 비슷하다. 그리고 9시는 아침잠이 많은, 특히 아이를 데리고 생활하는 우리에겐 너무 이른 시간이다. 바깥에 밝은 조명이라도 있으면 암막커튼을 쳐야 하는 우리에게 9시 전에 일어나라는 것은 정말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처음 며칠은 그럭저럭 맞춰보려 했다. '무료 조식인데, 이걸 안 먹으면 손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앞섰다. 무엇보다 나는 먹는 게 중요한 사람이니까. 잠은 포기해도 먹는 것은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삼일... 날이 갈수록 조식을 건너뛰는 경우가 많아졌다. 맨날 똑같은 메뉴에 지쳐버린 것이다. 한쪽에는 삶은 달걀과 스크램블 에그가 놓여 있었고, 옆에는 소시지나 베이컨이 등장한다. 그 외에는 낱개로 포장되어 있는 시리얼 몇 종류, 우유와 요거트, 베이컨과 식빵 등... 그나마 있는 과일들도 바나나와 사과, 멜론, 포도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나온다. 그나마 와플 기계가 있어서 한동안 맛있게 먹었지만 일주일 넘게 먹다 보면 정말 물린다. 게다가 두 살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먹이는 것도 고역이다. 결국, 조식을 먹기 위해 잠에서 억지로 일어나는 것도, 거기까지 가서 먹을 만한 음식을 찾는 것도 모두 고역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늦잠을 택했다. 조식을 포기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래도 호텔을 residence, 즉 주방이 포함되어 있는 방으로 잡은 것이 다행인 게, 적어도 라면은 끓여 먹을 수 있고, 전자레인지로 컵밥을 데워서 먹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부터 넉넉하게 가져온 컵밥으로 때우기 일쑤였고, 가끔 옆에 있는 Nugget이라는 식료품점에서 파는 요리를 데워 먹기도 했다. 이러한 생활에 적응하니 오히려 그게 우리 가족에게는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느지막이 아침을 챙겨 먹고 로비로 나와, 9시가 넘어도 제공되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 일정을 시작하는 것이 '우리의 템포'에 맞춘 삶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삶의 방식이, 삶에 대한 태도가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하거나 흔들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호텔 조식이 아무리 무료로 제공되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뒤흔들고 얽매인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본말전도가 따로 없을 것이다. '무료'라는 단어에 얽매여 우리의 삶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 미국 생활의 첫 교훈 중 하나였다.
데이비스의 겨울 해는 참 짧다. 아침 7시가 되어야 해가 뜨고, 오후 5시만 되어도 창밖이 어둑해진다. 막 데이비스에 도착한 우리는 시차 적응도 채 안 된 상태였고, 아침잠도 많아 늦게 시작한 하루가 금세 저물어버리니, 하루가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특히 외출이라도 하려면 서둘러야 했고, 어두워지기 전에 장도 보고 돌아와야 하다 보니 시간 관리가 생각보다 어렵게 느껴졌다.
해가 짧다는 건 단순히 해가 지는 시각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낮이 짧으니 체감 온도도 금방 떨어지고,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를 데리고 나가 산책하거나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하루 일과가 단조로워졌다. 그나마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라도 받으면 마음이 한결 따뜻해졌는데, 그 햇살마저 짧게 스쳐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해가 나는 시간에 최대한 밖으로 나가보려 애썼다. 비가 오지 않는 시간이면 산책이든 마트 장보기든, 뭔가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전환됐다. 데이비스의 겨울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한국에 비해 따뜻한 축에 속해서, 햇살만 있다면 산책하기 좋은 날도 제법 있었다. 특히 UC 데이비스의 학생들이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다들 고향으로 돌아간 덕분인지 현지인들이 한가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었던 것 같다.
데이비스에 와서 처음 먹고 싶었던 음식은 in-and-out burger였다. 교환학생 당시 산호세에서 처음 먹어보았는데, 한국에서 롯데리아만 먹어봤던 나에게 정말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랑하는 내 남편과 딸내미에게도 꼭 먹여주고 싶었다. 특히 애니멀 스타일의 감자튀김은 힘든 미국 생활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음식이었다(칼로리를 생각하지 않고 먹어야 한다). 오랜만에 먹어보니 15년 전 그때 그 맛이 다시 떠올랐다. 남편은 더블더블 버거를 정말 사랑했는데, 신기하게도 살은 한국에서보다 더 빠지더라. 아마 공부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그 모든 것들에 한국에서보다 2배의 힘이 필요한 것도 있을 것이다. 수도꼭지는 뻑뻑하고, 문은 무겁고, 2층 계단을 항상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나중에도 나오겠지만, 물가가 너무 올라서 더 이상 동네 고급 식료품점(Nugget)을 이용하지 못하고, 대신 코스트코에서 대량으로 구매해서 냉장고에 소분해 놓는 형태로 삶의 방식이 바뀌었는데, 그 과정에서 대량 구매한 물건들을 차에서 집으로 옮기는 것도 남편의 몫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 있을 때는 약간 면봉처럼 생겼었는데, 미국에서 생활하고 나니 조금 봐줄만한 몸매가 돼서 내심 기쁘다.
호텔에서 숙박을 하고 있을 떼다. 으슬으슬하니 뭔가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어 지는 날씨에 근처 Nugget에서 수프를 사볼까 해서 다녀왔다. 특히 호박 수프가 당겼는데, "Spicy pumpkin soup"이라는 게 있어 매운 것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남편이 한 숟갈 먹더니 표정이 정말 이상하게 변하는 게 아닌가. 남편이 눈으로 욕을 하면서 말했다.
"자기야 이거 어디서 샀어? 아 Nugget이지... 이게 무슨 맛이지 호박수프 맞나...?"
"왜 맛없어? 매운 거 좋아해서 한 번 사봤지. 나도 한 번 줘볼래?"
와 이런 맛이 세상에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첫맛은 단맛, 그 뒤로 밀려오는 건 계피와 넛맥, 정향 같은 이국적인 향신료의 향. 맵기보다는 입 안 가득 퍼지는 알싸한 향, 마치 호박에 크리스마스 향을 버무린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질감은 진하고 크리미 했지만, 그 고소함을 잡아주는 감칠맛은 부족했다. 한국식 단호박죽을 기대했던 우리에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맛이었다. "적응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계속 먹어봤지만, 그 낯선 향은 먹을수록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결국 몇 숟가락 뜨다 말고, 남은 수프를 버려야만 했다.
미국에서 ‘spicy’는 절대 ‘고춧가루’가 아니다. 보통 시나몬, 클로브, 올스파이스, 넛맥, 간혹 카이엔 페퍼나 흑후추까지 다양한 향신료를 통해 약간의 매콤함을 첨가한 맛을 'spicy'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호박은 주로 고소하고 담백하거나 살짝 단맛이 감도는 형태로 요리되는데, 여긴 그 단맛을 향으로 부풀리고, 감칠맛 대신 향신료의 존재감으로 승부를 본다고 보면 된다. 여하튼 처음 맛보는 spicy pumpkin soup의 맛에 남편은 감동(?)을 금치 못했고, 우리 가족은 그 이후로 다시는 'spicy pumpkin'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았다.
1월 2일. 호텔에서 나와 Portage Bay apartment에 들어간 기념비적인 날이다. 하지만 처음 우리를 맞이한 것은 단지 텅 비어있는 집이었을 뿐이다. 2021년 11월에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다가 보낸 이삿짐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시 사기에는 식탁이며 소파, 의자, 책상, 침대, 식기류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한국에서 보내버렸다. 6개나 되는 이민가방 안에는 작은 식판 두 개, 냄비 작은 거 하나 큰 거 하나와 급하게 사용할 수저, 작은 프뢰벨 책상, 입을 옷들과 침낭, 그리고 무려 퀸 사이즈 토퍼가 있었다. 한 달이면 온다던 이삿짐은 3달이 지나서야 받아볼 수 있었고, 우리는 이 정도 세간살림으로 무려 2월까지 버텼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1월 경에 한국으로 귀국하는 분들에게 좋은 물건들을 저렴하게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들 밤에 잠만 자는지 미국의 집들은 기본적으로 조명이 너무 어둡다. 게다가 나무로 만든 집이라 그런지 방한이 잘 안돼서 집에 있다 보면 한기가 슬금슬금 내 몸을 잠식하다가 뼛 속까지 시려온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했던 전등과 라디에이터를 데이비스에 visiting scholar로 오셨다가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시는 분들께 싼 값에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이때 구매한 물건들은 우리가 알뜰살뜰하게 쓰다가 귀국할 때 필요로 하시는 분들에게 더 싼 가격에 드리고 오게 되었다.
현지인들 역시 무빙세일을 많이 이용한다. 하지만 처음 미국에 도착한 우리에게 현지인 네트워크가 없었고, 영어로 대화해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현지인들의 무빙세일을 이용하기가 어려웠다. 우리나라의 중고나라 네이버 카페와 같이, 주로 미국인들은 craigslist를 통해 중고매매가 이루어지는 편이다. 해당 지역에 무빙세일이나 나눔을 원한다면, facebook에 해당 지역명을 검색해 보도록 하자. 1년 넘게 현지인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알아낸 비결이다.
미국에서 최초로 자전거 전용 도로를 도입한 데이비스 시는 - 로고에서 알 수 있듯이 -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로 유명하다. 많은 UC Davis 학생들이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시민들 대다수도 교통 편의를 위해 자전거를 애용하고 있다. 특히 미취학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자전거 뒤에 트레일러를 부착하여 어린이집 등하원이나 애들과 함께 산책할 때 즐겨 타고 있다.
데이비스는 미국 전역에서 안전하기로 유명한 도시이기는 하지만, 자전거 절도범은 어디에나 있는 듯하다. downtown이나 학교 중앙광장(UCD Quad라고 함) 근처에 자전거를 장시간 주차해 두는 것은 도둑을 부르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 자전거 절도범들은 굉장히 대범해서, 아무리 강한 자물쇠를 사용하더라도 야밤중에 강력한 볼트 커터(Bolt Cutter)를 가지고 다니면서 단번에 끊어내고야 만다. 우리나라와 달리 차량 내 블랙박스도 거의 설치하지 않고, CCTV도 간헐적으로 설치되어 있어 자전거 도둑을 잡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남편은 한국에 있을 때부터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원래부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기도 했던 터라,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다니는 것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다. 아무래도 차 1대는 내가 장을 보거나, 아이를 케어하는데 주로 사용해야만 할 테니까. 하지만 자전거를 구입한 후 1달이나 지났을까?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을 남편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여보, 나 좀 데리러 올 수 있나?"
"무슨 일이야? 자전거 타고 오는 거 아니었어?"
"자전거 체인이 갑자기 끊어져서 타고 갈 수가 없네. 길 한가운데에 있어서 끌고 집에 가기가 좀 애매해서."
아마 교통수단에 마가 낀 게 틀림없다. 자동차는 중고차가 너무 비싸서 울며 겨자 먹기로 신차를 구입해야 했는데, 이번에는 자전거가 고장 나다니? 일부러 중고자전거를 사지 않았던 것도 혹시 자전거를 타다가 다치거나 고장이 많을까 봐 걱정되서였는데... 급한 마음에 딸내미와 함께 남편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당장 남편 몸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가벼운 찰과상 정도로, 크게 안 다친 것 같았다. 남편 이야기로는 정말 뜬금없이 갑자기 체인이 끊어졌고, 그 과정에서 자전거 페달이 헛돌면서 중심을 살짝 잃고 넘어졌다고 한다. 만약 자동차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야 했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정말 크게 다칠 수도 있었던 사고였던 것이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는 데이비스라 정말로 다행이었다.
미국에서는 보행자 도로에서는 자전거를 탈 수 없다. 물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대부분 이를 잘 지키는 편이며, 자전거 전용 도로가 없는 곳에서는 자동차와 함께 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