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시체비자, 나는 누군가의 그림자였다

데이비스의 햇살, 내 마음의 그늘

by 유지니안

1월의 데이비스(Davis)는 거짓말처럼 화창했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캘리포니아의 햇살은 한 점의 그늘도 없이 평화로웠고, 이름 모를 새들은 부지런히 지저귀었다. 가끔씩 오는 비가 오히려 공기를 싱그럽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완벽한 평화가 오히려 나에게는 지루한 모노영화처럼 느껴졌다. 내 마음은 끝없이 비가 내리는 한국의 궂은 장마철 한가운데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눈부신 햇살은 축축하게 젖은 내 마음의 이질감만 더욱 선명하게 비출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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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다녀올게! 빨리 갔다 올게!"

"아빠 빤니와~ 엘리 심심해!"

"여보 잘 다녀와요. 자전거 조심해서 타구요. 오늘 수업은 언제 끝나요?"

"사실, 발표 수업 때문에 저녁 늦게 끝날 것 같아. 미안해."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 그리고 남편이 내딛는 발걸음에 계단이 철컹철컹하는 소리. 그리고 적막감. 이때부터 나의 진짜 하루가 시작된다. 새 주인의 온기가 채 스며들지 않은 텅 빈 아파트. 침대도 없고 책상도 없고 식탁도 없고 소파도 없이 덩그러니 TV만 놓여 있는. 그 안에서 나는 만 2살 먹은 딸내미, 엘리와 함께 섬처럼 고립된다.

SE-ea63f407-6c1b-44dc-a5a4-01b325d0bea1.jpg?type=w1 가구 없는 빈 집에서 나와 엘리


남편은 LL.M. 과정을 밟기 위해 매일 법학 수업에 나갔다. 낯선 언어로 이루어진 법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였지만, 그는 점점 그 구조와 논리를 파악해 가며 자신의 언어로 해석해 내기 시작했다. 저녁이면 그는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었다. 판례 속의 인물들, 교수의 질문들, 토론 중 오갔던 날카로운 문장들까지. 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그가 열정을 다해 공부하는 모습은 대견하고,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그 대화는 동시에 나를 조금씩 무너뜨렸다. 그는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점점 세월에 뒤처지고 있다는 감각에 사로잡혔다. F-2 비자는 말 그대로 '시체 비자'라 불릴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부도, 일도, 사회적 관계도 모두 금지된 채, 나는 그저 존재만을 허락받은 그림자 같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만 두 살이 된 딸까지 돌봐야 했다. 세상과 단절된 작은 아파트 안에서, 아이와 단둘이 보내는 긴 하루는 참으로 버거웠고, 시간은 앞으로 흐르는 대신 끈적한 수렁처럼 내 발목을 잡고 제자리를 맴돌았다.

F-2 비자는 유학생의 배우자에게 발급되는 비자다. 말은 ‘동반 비자’지만, 실상은 ‘제약의 비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업도, 취업도, 정식 봉사 활동조차도 금지되어 있다. 미국 땅을 밟았지만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 채, 그저 유학생인 배우자의 곁에 ‘존재’만 허락받은 사람. 그래서 이 비자를 가진 이들 사이에선 F-2를 은어처럼 ‘시체 비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KakaoTalk_20250628_124554271.jpg 남편은 매일매일 업그레이드, 나는 항상 제자리


가장 큰 문제는 작고 연약한 엘리에게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의 엘리는 ‘어린이집’의 모범생이었다. 처음 어린이집에 들어갈 당시, '엘리가 어린이집에 적응하지 못해서 엄마를 붙잡고 울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했던 나를 무안하게 만들 정도로 씩씩하게 어린이집에 적응했던 아이. 아침이면 “엄마, 선생님 보고 싶어, 빨리 가자!”라며 내 손을 잡아끌던 아이. 친구들과의 소소한 다툼과 화해 속에서 세상을 배우고, 선생님의 따뜻한 눈 맞춤 속에서 사랑을 확인하면서 아이의 세계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미국에 오기 전 까지는.


새로운 세상은 아이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는 위협적인 소음이 되었고, 다양한 얼굴색을 지닌 낯선 이들의 얼굴은 공포 그 자체였다. 마트라도 갈 때면, 엘리는 내 다리에 매미처럼 달라붙어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주변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 무서움을 이겨내려는 듯이, 엄마의 관심을 원한다는 듯이. 밤은 더욱 끔찍했다. 한국에서는 한번 잠들면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던 아이였다. 하지만 이곳에 온 뒤로 엘리는 하룻밤에도 몇 번씩 악몽이라도 꾼 듯, 온몸을 떨며 자지러지게 울었다. 갑자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면서 고열을 앓기도 했다.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한편, 집 안에서 엘리는 오직 한 가지만을 찾았다. 아파트에 들어오자마자 적막한 실내를 견디지 못해 급하게 구입했던 TV. 아이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리모컨부터 찾았다. 그리고 마치 세상의 모든 불안과 소음을 차단하려는 듯, 영혼 없는 노랫소리와 현란한 불빛에 자신을 내던졌다. 나는 그 앞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TV는 내게 잠시나마 숨 돌릴 틈을 주는 고마운 ‘디지털 보모’였지만, 동시에 나의 무력함과 실패를 증명하는 끔찍한 증거물이기도 했다.

SE-f3bcae59-12de-4964-bbfe-46eae786314d.jpg?type=w1 갑자기 온 몸에 고열을 동반한 두드러기가 생긴 엘리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코코멜론’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도 없는 엘리를 보다 문득 깨달았다. 이 작은 아이는 지금, 새로운 세상과 자신을 연결해 줄 단 하나의 ‘끈’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 TV의 인공적인 불빛이 아니라, 살아있는 온기가 느껴지는 연결고리. 한국의 어린이집처럼,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또래 친구들과 서툴게나마 손을 맞잡고, 넘어지고, 웃으며 서서히 낯섦을 익숙함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을 찾아주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유일하고도 가장 절실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더 이상 이 불안의 그림자 속에 아이를 방치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날 밤, 엘리를 재우고 나와서 오랜만에 낡은 노트북을 열었다. 검색창에 'Preschool in Davis, CA'를 검색하자 화면 위로 십여 개의 이름과 알록달록한 로고들이 내게 손짓했다. 지도 위에 보석처럼 박힌 점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중에 내 아이, 우리 엘리를 위한 곳 하나쯤은 분명히 있으리라고. 그것은 절망의 끝에서 발견한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나는 각 학교의 홈페이지를 하나하나 꼼꼼히 뜯어보며,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에서 우리 엘리의 미래를 겹쳐 보았다. 그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막막했던 캘리포니아의 안갯속에서, 마침내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오는 듯했다. 내일 아침이 오면 나는 커피를 내려 마음을 다잡고 이 목록에 있는 모든 곳에 전화를 돌리리라.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이메일이라도 보내야지. 그중 적어도 한 곳은 분명, 우리를 향해 기쁘게 문을 열어주리라. 나는 그 순진한 기대를 품에 안고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스크린샷 2025-06-17 154103.png Davis에 있는 preschool 현황 (출처: map.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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