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축하와 작별이 교차하는 5월

생일의 웃음과 학기말의 여운

by 유지니안

#1. 엘리의 생일 파티


Parent Education Class에서 배우는 내용

"Summer birthday friends는 5월에 생일 파티를 할 거예요."

4월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 Parents Education Class(학부모 교육)에서 Teacher Becky가 설명했다.


DPNS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에 학부모교육을 진행했다. 부모들이 육아와 아동 발달에 대한 수업을 듣는 시간.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아이들은 집에 두고 와야 해서, 남편이나 나 둘 중에 한 명만 참여할 수 있었다.


"6월부터 8월 사이에 생일인 아이들이 여덟 명이나 돼요. Academic year가 5월 말에 끝나니까, 이 아이들은 학기 중에 생일파티를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5월 한 달 동안 summer birthday를 미리 축하합니다."

Teacher Becky가 커다란 달력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엘리도 그 여덟 명 중 한 명이었다. 7월 생일이니까.

"날짜가 겹치지 않게 sign up sheet에 이름 써주세요. 한 날짜에 한 아이만요."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모들이 우르르 달력 앞으로 몰려갔다. 나도 재빨리 5월 둘째 주 목요일 칸에 'Ellie'라고 적었다. 기왕이면 Duty day에 생일 파티를 하는 게 효율적이니까.

'생일 파티에는 뭘 가져가야 하지...? 다른 애들 생일파티 때 보니까 간식이나 아이스크림 같은거를 나눠주던데.'

벌써부터 엘리의 생일 파티에 가져갈 간식(treat)이 걱정되었다.


< DPNS Parent Education Program >
DPNS에서 부모는 단순히 "보호자"가 아니라 "교육 파트너"로 본다. 이에 따라,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매월 저명한 명사들을 모시고 Parent Class를 개최하고 있다.
Parent Class를 통해 부모들은 아이의 발달을 이해하고, 불필요한 불안을 줄이며, 문제 상황(떼쓰기, 적응 문제 등)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고, 아이와의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으며, 더 넓게는 부모-아이-교사 공동체를 경험하게 된다.
DPNS는 부모가 어린이집 활동에 함께 참여하는 만큼 parent class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 부모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아이 동반이 엄격하게 금지되며, 연간 7회 이상 참석이 요구된다(부부가 함께 참석 시 2회로 인정).
parent class를 통해 부모가 학습하는 내용은 아래와 같다.
- 놀이의 가치 인식: 놀이는 단순한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아이의 지적·사회적 발달에 핵심적 역할임을 배우게 됨.
- 아동 발달 이해: 아이의 성장은 규칙적이지 않고, 개인차가 크다는 사실을 수용. 각 발달 단계별 적절한 지원 방법을 학습.
- 양육 기술 및 자기 성찰: 부모 스스로의 양육 태도, 말투, 행동을 돌아보고 개선. 아이를 통제하기보다 자율성과 자기표현을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게 됨.
- 공동체적 양육: 다른 부모들과 협력하고 서로 배우는 과정에서, "내 아이만"이 아니라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시각을 체득.




생일파티 날이 다가올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다른 아이들의 생일파티를 몇 달간 지켜보니, 부모들이 가져오는 음식도 가지각색이었다. Ollie 엄마는 직접 구운 레인보우 컵케이크를 가져왔고, Ramsey 아빠는 Nugget Market의 거대한 초콜릿 케이크를 들고 왔다. Wolf의 할머니는 글루텐 프리, 오가닉, 논-GMO, 비건 옵션까지 고려한 컵케이크를 직접 구워왔다.

"그냥 Costco 케이크 사가면 안 돼?"

남편의 현실적인 제안에도 뭔가 아쉬웠다. 첫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DPNS에서의 생일파티인데, 좀 특별한 걸 하고 싶었다.


그러다 KP Mart에서 찹쌀선과를 발견했다. 초록색 포장지에 ‘참쌀 선과’라고 적힌, 어릴 적 TV 보며 무심코 집어먹던 바로 그 과자. 바삭한 식감에 짭짤하고 고소한 맛, 세대를 넘어 여전히 익숙한 그 맛이었다.

“이거 애들이 먹을까?”
“한 번도 안 먹어본 맛이니까 오히려 신기해하지 않을까?”

과자만 나눠주는 건 어쩐지 성의가 부족해 보였다. 한국적이면서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료를 곁들이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건 요쿠르트. 연한 살구빛 액체가 담긴 작은 베이지색 플라스틱 병, 그 위를 덮은 반짝이는 초록빛 은박 뚜껑. 빨대를 톡 꽂아 마시기 좋은, 우리 세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그 음료였다.

그렇게 찹쌀선과 두 봉지와 요쿠르트 30개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미국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한국 간식이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솔직히 조금은 도박 같았다.




5월 둘째 주 목요일 아침, 생일 파티 한다니까 마냥 신난 엘리는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엄마! 나 드레스 입고 가고 싶어."

이럴 때를 위해 아끼던 파란색 원피스를 꺼내주었다. 워낙 흙투성이로 돌아오던 엘리에게 평소에 입히지 못했던 옷이다. 데이비스의 5월은 이미 여름이라 반팔 원피스가 딱 적당했다.


DPNS 정문 앞에 "Happy Birthday"와 케이크가 붙어 있었다. 초 갯수는 엘리 나이와 똑같은 4개. 밑에는 엘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기념으로 사진 한장 찍고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서니 Teacher Christina가 종이로 만든 생일 왕관을 꺼내주었다. 다른 친구 생일에는 절대 쓸 수 없다. 평소 저 왕관을 정말로 쓰고 싶어했던 엘리는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었다. 평소엔 머리에 뭘 쓰는 걸 싫어하는데, 오늘은 하루 종일 왕관을 쓰고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엘리, 이따가 생일 파티 때 쓸거야. 지금은 잠깐 벗어두자 어때?"

"싫어!"

...그렇게 왕관을 쓰고다니다 그만 찢어지고 말았고, 결국 왕관 없는 생일 파티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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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circle time.

보통 그 날의 주인공이 Circle Time을 알리는 종을 울린다. 오늘은 엘리 차례.

"Come in! Circle time!"

밖에 나와있던 아이들이 모두 손을 씻고 block area에 들어왔다. 종을 울리던 엘리는 쪼르르 달려가 Teacher Christina 옆에 앉았다.

"Today is very special day! It's Ellie's birthday celebration!"

아이들이 일제히 선생님 옆에 앉은 엘리를 쳐다봤다. Wolf가 옆에서 "Ellie's birthday! Ellie's birthday!"를 연신 외쳤다.

"Let's sing Happy Birthday for Ellie!"

스물세 명의 아이들이 목청껏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누군가는 박자가 빨랐고, 누군가는 가사를 까먹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진심으로 엘리를 축하하고 있었다. 엘리는 쑥스러운 듯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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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낵 타임이 되자, 내가 준비한 찹쌀선과와 요쿠르트를 나눠주었다. 인절미 콩가루가 묻어있는 참쌀선과는 처음 본 아이들.

"What is this?"

주저하는 아이들을 위해 Teacher Christina가 먼저 한 입 베어물더니, 웃으며 말했다.

"Mmm, it's crunchy, a little salty, and nutty… kind of like a peanut cracker, but lighter."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하나씩 집어 들었다. 낯선 과자가 주는 고소함에 놀란 듯, 금세 웃음소리가 교실에 퍼졌다.

"This is a Korean rice snack — kind of like a rice cake. But it is crunchy, not chewy."

먹느라 조용한 틈을 타 찹쌀선과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문화 교육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2. Goodbye DPNS, Welcome again


5월 마지막 주 금요일. 드디어 Academic Year의 마지막 날이 왔다.

아침부터 뭔가 달랐다. 평소엔 서둘러 아이를 드롭하고 가는 부모들도 오늘은 교실 안으로 들어와 서성였다. 벽에 걸려있던 아이들의 작품들이 하나둘 떼어져 봉투에 담기고 있었고, 사물함(cubby)에 있던 여벌 옷과 개인 물품들도 부모들 손에 들려 나가고 있었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에요?"

나도 모르게 Teacher Becky에게 물었다. 9월부터 5월까지, 9개월 동안 매주 한 번씩 duty day로 이곳에 왔는데, 갑자기 끝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Yes, but we'll have summer camp in July. Will Ellie join us?"

"네, 신청했어요."

하지만 summer camp는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이다. 선생님도 일부만 오고, 아이들도 절반 정도만 참가한다. 무엇보다 이 아늑한 교실의 분위기, 9개월 동안 쌓아온 루틴과 친밀감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특별한 활동은 없었다. 모두가 함께 DPNS에서의 마지막 날을 즐기는 날. 엘리는 여전히 제일 먼저 야드로 뛰어나갔다. 우리의 Yard Kid.

9개월 전엔 그네도 무서워했던 아이가 이제는 "Push me higher!"를 외치며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트라이시클도 혼자 타지 못했는데, 이제는 Ramsey와 경주를 하며 깔깔거린다.


"모두 모여봐요!"

Teacher Becky가 아이들을 부른다. 드디어 마지막 단체사진을 찍을 시간.

"Everybody look at the camera! Say cheese!"

Brynn 엄마, Amber가 카메라를 들었지만, 스물일곱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카메라를 보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누군가는 하늘을 보고, 누군가는 옆 친구와 장난치고, 누군가는 코를 파고 있었다.

"One more time! This time, everyone smile!"

열 번쯤 찍고 나서야 그럭저럭 모두가 카메라를 보는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나중에 받아본 사진을 보니, 엘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사진을 찍고 있었다. 대체 왜...? 아이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드디어 마지막 Circle Time이 시작됐다.

Teacher Becky가 기타를 들고 'So Long, Farewell'을 부르기 시작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그 노래.

아이들은 가사를 모르지만 "So long, farewell"하는 부분만 따라 불렀다. 몇몇 엄마들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글쎄, 뭔가 멍한 기분이었다.


"This year, you all grew so much. You learned to share, to be kind friends, to use your words instead of hands, to clean up after playing..."

Teacher Becky가 차분한 목소리로 한 해를 정리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지난 9개월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9월 첫날, 나를 붙잡으려고 울부짖던 엘리, 금세 적응해서 "Bye mommy"라고 손을 흔들며 나를 보냈었다.

10월, DPNS Fall Festival과 할로윈. 주황색 호박과 신데렐라 검은 공주 엘리.

11월, DPNS 학부모들과 함께한 첫 캠핑. 진짜 얼어죽는 줄 알았었지.

12월, 짧은 겨울방학. 미국박사의 꿈을 접으며 우울한 감정을 추스리기 바빴었다. 그 와중에 도어 딩...

그렇게 새해를 맞이하고 1월, 비가 오는데도 밖에서 신나게 놀던 엘리.

2월, Valentine's Day 카드를 직접 만들어 나에게 주던 엘리의 자랑스러운 표정.

3월, 4월, 그리고 오늘, 이 마지막 날까지. 아, 램지와의 첫사랑, 절친 루시와의 추억도 빼놓을 수 없다.


"Parents, thank you for trusting us with your precious children. And thank you for all your participation and support."

DPNS가 특별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단순히 아이를 맡기는 곳이 아니라, 부모가 함께 참여하고 성장하는 곳. Duty day를 하면서 다른 아이들의 발달 과정을 지켜보고, parents meeting에서 육아의 고민을 나누고, potluck에서 각자의 문화를 공유하면서,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갔다.


9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그 시간 동안 엘리는 한국어만 하던 수줍은 아이에서 "Can you make a magic for me?"라고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아이로 자랐다. 그리고 나는, 낯선 땅에서 불안해하던 엄마에서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DPNS. Davis Parent Nursery School.

Parent가 가운데 들어간 이유를 이제야 제대로 알 것 같다. 여기서는 아이만 자라는 게 아니라, 부모도 함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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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날의 단체사진을 꺼내 본다. 스물일곱 명의 아이들 중 동양인은 엘리 하나뿐. 백인, 흑인, 라티노, 인도인... 다양한 얼굴들 속에서 엘리의 까만 머리가 유독 눈에 띈다.

처음엔 그게 걱정이었다. 혼자만 다른 엘리가 소외되지는 않을까. 'Different'가 'Wrong'이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지만 DPNS에서 우리는 '다름'이 아니라 '함께'를 배웠다. Teacher Becky는 엘리가 가져온 김을 "Ellie's special seaweed"라고 소개했고,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한 장씩 나눠 먹었다. Korean Day 때 한복을 입고 간 엘리를 보고 "You're a princess!"라고 말해 준 친구가 있었다.

우리를 이방인이 아닌 neighbor로, outsider가 아닌 community member로 받아준 DPNS. 그 따뜻한 품 덕분에 낯선 미국 소도시 데이비스에서도 우리는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완벽하진 않았다. DPNS를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Your English is so good!"이라는, 선의지만 뼈아픈 칭찬을 들은 적도 있었다. "니하오", "곤니치와"라고 인사하는 사람들 때문에 곤란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조차 삶의 일부였다고, 이제는 생각한다.


유난히도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던 5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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